재수사 1
장강명, 6년 만의 신작 장편
공허와 불안의 한복판을 타격하는 서늘하고 날카로운 서사!
“올여름, 마침내 나는 상상 속의 소설을 만났다. 이 소설이 바로 그 소설이다.”
《표백》 《댓글부대》 《우리의 소원은 전쟁》 《한국이 싫어서》……. 날카로운 지성과 거침없는 상상력,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우리 삶과 연관된 가장 사실적인 순간을 포착해온, 그야말로 장르불문의 올라운더 소설가 장강명의 신작 장편소설 《재수사》가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된다. 6년 만의 장편소설이다. 강력범죄수사대 소속 형사 연지혜가 22년 전 발생한 신촌 여대생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이 소설은, 치밀한 취재로 만들어낸 생생한 현장감, 서사를 밀고 나가는 날렵한 문체와 빈틈없는 전개에, 현실을 타격하는 날카로움이 더해진 장강명표 사회파추리소설이다. 치밀하게 전개되는 수사 과정, 그 속에서 밝혀지는 비밀과 반전, 방대한 자료조사를 통해 쌓아 올린 서사는 원고지 3천 매에 달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독자로 하여금 책을 내려놓을 새 없이 소설의 끝을 향해 내달리게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이 겨냥하는 것은 단순히 재미뿐만은 아니다. 소설은 기대와 불안이 거대한 에너지가 되어 소용돌이 치던 2000년의 신촌을 거울로 삼아 지금의 한국 사회를 진단하고자 한다. 소설이 본질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형사사법시스템이다. 밀레니엄으로부터 22년, 우리 사회는 어떤 동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공동체 유지에 필수적인 죄의 정의와 처벌은 윤리적이고 정의롭게 진행되고 있는가.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가설에 기댄 과거의 윤리의식은 여전히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제 어떤 윤리와 도덕이 우리에게 필요한가, 이 소설은 그 첨예하고 치열한 논쟁 속으로 기꺼이 발을 내딛는다.
22년 전 미제사건을 다시 수사하라!
현장에 남겨진 DNA, 반쪽짜리 CCTV 이미지…
지금 우리는 그날의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100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범인의 회고록과 형사의 수사를 두 축으로 두고 그 둘 사이를 팽팽하게 오가며 진행된다. 22년 전 신촌에서 여대생 민소림을 죽인 범인은 회고록을 통해 살인의 과정을 복기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사회를 분석하며 우리 사회의 시스템과 윤리를 공격한다. 그는 시스템의 기저에 계몽주의가 있다고 말하며, 우리 사회가 새로운 윤리를 필요로 한다고 역설한다.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 고백을 시작하기에도 그보다 더 좋은 문장은 없을 것 같다.
나는 22년 전에 사람을 죽였다. 칼로 가슴을 두 번 찔러 죽였다.
―본문 9쪽
그리고 나는 내가 무엇을 상대하고 있는지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다. 그건 신이나 양심이나 내면의 목소리 따위가 아니었다. 멀어지는 사이렌 소리나 경찰 마크나 형사 한두 명도 아니었다.
내가 상대해야 하는 것은 이 사회의 형사사법시스템이었다.
―본문 23쪽
살인자인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처럼 삶의 의미와 윤리적 지침이 필요하다. 아니, 살인자이기에 더욱더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해줄, 강하고 남다른 도덕적 중심을 원한다.
―본문 86쪽
이에 답하듯, 또 다른 한 축에서는 연지혜 형사의 재수사가 시작된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강력범죄수사1계 강력1팀 1반 소속 연지혜 형사는 2000년 8월에 벌어진 신촌 여대생 살인사건의 재수사를 맡게 된다. 신촌 뤼미에르 빌딩 1305호에서 벌어진 이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당시 연세대에 재학 중이던 대학생 민소림으로, 과도로 추정되는 흉기에 찔려 죽은 채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민소림의 원룸에는 에어컨이 켜져 있었고 시신은 우비와 이불로 덮여 있었다. 뤼미에르 빌딩 엘리베이터 CCTV는 짝수 층은 망가져 있었고 홀수 층의 CCTV만 가동되고 있었는데, 8월 3일 0시경 13층에서 내려가는 남자의 이미지가 하나 남아 있었지만 모자를 깊게 눌러써 턱 부분의 윤곽만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민소림의 몸에서는 신원미상의 DNA가 발견되었으나 당시에는 매치되는 사람이 없었다.
“서대문경찰서에 수사본부가 차려져서 반년 이상 강도 높게 수사를 했지. 뭐, 탐문수사만 1000명 넘게 했을 거야. 뭐, 피해자 친구나 지인, 동네 주민, 그 일대 불량배들, 신촌에 오갈 수 있는 전과자들까지 다 조사했지. 그런데 범인을 못 잡았어.”
정철희가 말했다.
“그걸 지금 다시 수사하자는 말씀이신 건가요?”
최의준이 눈을 껌뻑거리며 물었다.
“DNA 검사 결과가 있어. 뭐, 용의자 사진도 있고.”
정철희가 말했다.
―본문 13~14쪽
과거의 기록을 더듬어가던 연지혜는 당시의 수사 기록에서 누락된 부분을 발견한다. 민소림과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는 연세대학교 남학생을 소환한 기록은 남아 있었으나 그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없었던 것이다. 그 기록을 살핀 정철희는 과거에 자신이 수사 중 그 학생의 뺨을 때린 적이 있다며 그를 기억해낸다. 이름 이기언. 22년이 지난 지금은 IT 회사의 대표가 되어 있는 이기언을 찾아간 연지혜와 정철희는 2000년 당시 민소림과 이기언이 미등록 도스토옙스키 독서 모임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특이한 모집 공고가 있었습니다.”
“어떤 거였는데요?”
“공고문이 이렇게 시작했어요.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문장들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함께 도스토옙스키 3대 장편소설과 다른 책들을 한 학기 동안 깊이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의식화 교육 없고 선후배도 없습니다. 평가도 없고 정답도 없습니다. 이름도 없고 회비도 없습니다. 쓸모도 없습니다. 읽지 않고 오시는 분, 책보다 사람이 좋다는 분은 사양합니다’라고 적혀 있더군요. 그 아래 이메일 주소가 하나 적혀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만 그 독서 모임 공고 윗줄에 적혀 있는 문구들은 도스토옙스키 3대 장편소설에 나오는 문장이 아니었어요. 《지하로부터의 수기》 첫 대목이지요.”
(……)
“모임에 몇 명이나 나왔나요?”
“처음에는 일곱 명이었습니다. 저랑 민소림을 포함해서요.”
―본문 298~299쪽
연지혜는 이기언의 소개로 도스토옙스키 독서 모임의 멤버들을 만나게 된다. 지금 영화감독이 된 구현승, 목수인 주믿음,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김상은. 셋은 종종 주믿음의 공방에서 만난다고 했다. 취재가 이어지던 어느 날, 주믿음은 민소림의 죽기 전 행적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는데…….
“사실 저에게 《백치》 를 권해준 사람이 민소림이었어요. 그날이 민소림을 마지막으로 만난 날이었어요. 7월 말이나 8월 초였던 거 같습니다. 여름 계절학기 끝나고 며칠 뒤였는데.”
주믿음의 말을 듣고 연지혜는 긴장했다. 민소림의 마지막 열흘에 대한 첫 증언이 나오는 중이었다.
―본문 409쪽
“장강명은 장강명의 방식으로 쓴다.
불편하고 정확하게, 빈틈없고 집요하게, 말하자면 꼼짝 못 하게.”
《재수사》가 정조준하는 것은 한국의 형사사법시스템과 그것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윤리의식이다. 사회는 죄와 그에 합당한 벌을 구획하고 집행함으로써 공동체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적합하며 윤리적인가는 늘 논쟁적이다. 2022년의 한국은 어느 때보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절대적인 정의, 새로운 윤리에 대한 열망으로 뜨겁다. 사회의 공통감이 이전의 처벌 시스템이 포함하지 못한 영역을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윤리가 우리 앞에 세워져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빈약하다. 어떤 윤리가 우리에게 필요한가, 어떤 정의가 어떤 방식으로 집행되어야 하는가. 이 소설은 불편하지만 집요하게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을 던진다.
한편 《재수사》는 특별하다. 저자 스스로 ‘분수령이 될 작품’이라고 언급할 정도이다. 그간 가장 동시대의 사건을 마중물 삼아 현대사회를 진단해온 장강명은, 이번 소설에서는 2000년의 신촌을 거울로 삼아 2022년 한국 사회를 진단하고자 한다. 한국사를 통시적으로 읽어내며 외환위기가 휩쓸고 지나간 2000년의 신촌에서 현대사회의 기저에 있는 공허와 불안의 근원을 발견한다. 기준과 합의가 사라진 사회, 절대적 가치가 희미해진 사회에서 인간은 무한한 공허와 불안 속에 머물게 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미제사건’은 죄와 벌이 합당한 방식으로 평가되고 처벌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거대한 비유이며, 절대적 가치가 집행되지 못한 자리, 즉 합리성의 한계지점이다.
이 자리에 도스토옙스키 독서 모임이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허무와 치열하게 싸워온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알레고리로 배치하며, 《재수사》는 현대의 허무와 공허를 정확하게 분석하면서도 그것과 치열하게 싸우는 문학의 자리에 자신을 놓아둔다. 픽션이 현실과 가장 가까이 만날 때, 그것은 진실해진다. 장강명은 오늘도 진실하게 쓴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이제 그 진실한 소설을 내보인다.
▣ 본문에서
“그 큰 시스템 전체에서 형사 한 사람의 역할을 보면,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거지. 이게 우스운 게, 괜찮은 형사의 영향력은 작아. 무능한 형사의 영향력도 크지 않아. 그런데 나쁜 형사의 영향력은 커.”
“네?”
“어느 형사가 제 할 일을 잘해서 그 팀이 범인을 잡는다, 그래서 검사가 기소하고 판사가 유죄 때리고 범인이 감옥에 간다, 그러면 그걸로 끝이지. 부품들이 제대로 굴러간 거야. 어느 형사가 게을러서 자기 할 일을 안 한다, 또는 무능해서 제 일을 잘 못한다, 이건 시스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지 않아. 뭐, 이 시스템에는 보완 장치들이 있으니까. 그 형사가 증거를 제대로 수집하지 못하거나 목격자 진술을 제대로 받지 못해도,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하면 돼. 어디 나사가 좀 삐걱거리거나 벨트가 느슨해진 정도야.
그런데 어느 형사가 증거를 조작했다거나 증인을 협박했다면? 그러면 관련 증거를 전부 못 쓰게 돼. 최악의 경우에는 진범을 잡아놓고도 풀어줘야 할 수도 있어. 볼트 조각이 부러져서 다른 톱니 사이에 끼면 기계장치 전체가 멈춰버릴 수도 있는 거지. 다른 부품들도 못 쓰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겠고. 바꿔 말하면, 우리 형사사법시스템은 나쁜 형사에 취약해. 그러니까 이 시스템에 몸담은 사람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나쁜 부품이 되면 안 된다는 거야. 차라리 헐렁하고 게으른 게 나아.”
―본문 25~26쪽
살인자인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처럼 삶의 의미와 윤리적 지침이 필요하다. 아니, 살인자이기에 더욱더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해줄, 강하고 남다른 도덕적 중심을 원한다.
―본문 86쪽
‘어느 날 제대로 알게 될 것이다.’ 연지혜는 예감했다. 자신의 미래를 흘끗 본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너는 여성 청소년 범죄를 담당하게 돼. 그리고 거기서 너무나 끔찍한 사건을 맡는다. 너는 분노할 테고, 이성을 잃을 거야. 분노가 너를 덮칠 거야.
그때, 네가 바라는 게 정의인지 복수인지 알게 될 거야.
선택하게 될 거야
―2권, 본문 194쪽
나는 민소림과 닿아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비록 살아 있는 민소림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그리고 죽은 민소림을 통해 자신이 정의와도 약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연지혜는 생각했다. 정의, 아니면 그와 비슷한 거대한 무언가와.
겨우 이어진 것 같은 그 가냘픈 선이 끊길까 봐 두려웠다.
―2권, 본문 242쪽
▣ 추천의 말
미스터리 독자로서 나는, 종종 이런 소설을 상상한다. 정통 추리 형식을 따르면서도 지적 유희 혹은 사유를 제공하고, 몇 날 며칠 파고들 만한 풍부한 서사에 예상치 못한 반전을 보장하는 소설. 덤으로 개운한 뒷맛까지 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올여름, 마침내 나는 상상 속의 소설을 만났다. 이 소설이 바로 그 소설이다.
― 정유정(소설가)
장강명은 장강명의 방식으로 쓴다. 불편하고 정확하게, 빈틈없고 집요하게, 말하자면 꼼짝 못하게. 이 소설은 22년 전에 사람을 죽이고도 수사망에 잡히지 않은 범죄자와 22년 전 발생한 미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가 등장하는 수사물이다. 그러나 실상 쫓고 쫓기는 건 용의자와 형사가 아니다. 죄를 짓는 개인과 처벌하는 시스템, 죄를 둘러싼 이념과 벌이라는 공동체, 일탈하는 실존과 통제하는 보편. 죄에서 벌을, 벌에서 죄를 검토하는 이 소설이 궁극적으로 탐문하는 것은 죄와 벌에 대한 우리의 상식이다. 이 재수사가 수사보다 더 진땀나는 이유다. 혼돈이 모든 것을 삼킨 시대에 이토록 본질을 향하는 소설이라니, 장강명이 쓰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장강명이 쓰지 못하는 건 있을 수 없다. 이 소설이 그 증거다.
―박혜진(문학평론가)
▣ 작가의 말
이 소설을 쓸 때 두 가지 목표가 있었습니다. 첫째, 현실적인 경찰 소설을 쓰자. 한국 형사들이 수사하는 과정을, 과장된 액션이나 초능력같은 도구 없이 사실적으로 그려보자. 둘째, 2022년 한국 사회의 풍경을 담고, 그 기원을 쫓아보자. (……) 2020년대 한국 사회의 가장 깊은 문제를 두 단어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저는 ‘공허’와 ‘불안’을 꼽겠습니다. 저는 그 공허와 불안의 기원이 이 사회의 시스템에 내재되어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이렇게 설계된 사회에서는 누구도 공허와 불안의 함정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차례
1권
재수사 1 …… 9
2권
재수사 2 …… 7
작가의 말 …… 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