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의 노래
2023 부커상 수상작
2023 부커상 수상작
“오늘날의 많은 정치적 위기와 공명하면서도
오로지 문학성으로 승리한 책”
_부커상 심사위원장
2023년 부커상 수상작 《예언자의 노래》가 출간된다. 전체주의에 휩쓸린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작가가 “시리아 난민에 대한 명백한 무관심”이 집필의 발단이 되었다고 밝혔듯, 명백한 현실을 허구로 전복함으로써 통렬한 소설을 완성해냈다. 부커상 심사위원장은 “그 어떤 것에도 개의치 않고 국가 폭력과 내몰림의 현실을 그렸다”고 선정 이유를 밝히며 “오늘날 많은 정치적 위기와 공명하면서도 오로지 문학성으로 승리한 책”이라고 덧붙인 바 있다. 반복되는 모티프와 의도적 생략, 따옴표와 문단 나눔을 없애는 형식까지, 작가는 대담한 시도를 통해 실로 물리적이라 할 만큼 독자들을 문장 속에 붙들어둔다. 그렇게 주인공의 고통과 고뇌를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작가는 거대한 시스템의 비극을 개인의 차원으로 치환한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세상의 종말 같은 더 큰 혼란의 전조이기 이전에 수많은 개인의 종말임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악화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그 울림이 더해만 가는 책이다.
“조만간 고통이 두려움보다 더 커질 것이고,
두려움이 사라지면 이 정권도 사라질 것이다”
전체주의에 휩쓸린 아일랜드, 가족을 지키기 위한 한 여성의 분투
경찰이 집으로 찾아오면 누구나 느끼는 이 반사적인 죄책감. 벤이 품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오른쪽의 나이 많은 사복 경찰이 아이를 보고는 표정이 부드러워지는 듯해서 그녀는 그를 향해 대답한다. (…) 아일리시는 전화기를 보고 집어 들어 주저하는 손으로 래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어느새 다시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다본다. 이제 어두워지는 정원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저 어둠의 일부가 집으로 들어왔다.
주인공 아일리시의 집에 어느 날 사복 경찰이 찾아온다. 그들은 교원 노조인 남편을 찾고 아일리시는 별일 아닐 거라고 불안을 달래보지만 이내 남편이 붙잡혀 가고 만다. 변호사 접견, 불법 구금에 대한 항의, 그 모든 상식선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눈을 떠보니 그녀는 전체주의에 휩쓸린 국가 한복판에 네 아이와 함께 놓여 있다. 나날이 치매가 악화되는 아버지, 국방군 징집 통지서를 받은 큰아들, 여권 발급이 거부된 막내. 도망도 기다림도 선택할 수 없는 삶에서 그녀는 어떤 답을 찾아낼 것인가.
2023 부커상·2024 데이턴문학평화상 수상작
명백한 현실을 허구로 전복해 완성한 통렬한 소설
래리한테 그 사람들 조심하라고 해라, GNSB라니, 국민연합당이 집권하자마자 특별 수사대를 GNSB로 대체하면서 일주일 동안 잡음이 있었지만 곧 사라졌지, 진압된 게 분명해,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 비밀경찰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는데.
폴 린치는 “아일랜드 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끄는 빛”(<뉴욕저널오브북스>)이라고 평가받는 작가로, 콜레라 팬데믹 시기 비극적 죽음을 맞은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첫 작품 《아침의 붉은 하늘》, 아일랜드 대기근을 살아낸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그레이스》 등을 통해 이방인과 내몰린 삶에 주목해왔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적으로 알린 2023 부커상 수상작 《예언자의 노래》 역시 그 출발은 ‘시리아 내전에 대한 서구 사회의 명백한 무관심’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이야기의 무대를 통째로 아일랜드로 옮겨 와 통렬한 소설을 완성했다. 어딘가의 명백한 현실을 가장 허구가 되는 공간에 풀어놓음으로써, 그 자체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다.
“이 책은 급진적 공감을 위한 시도”
독자를 문장 속에 가두는 시적 필치와 문학적 장치
“문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경험해봐야 한다. 때문에 고도의 리얼리즘을 도입하여 디스토피아를 심화하고자 했다. 독자들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문제를 알 뿐만 아니라 직접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몰입도를 높이고 싶었다.”_부커상 인터뷰 중에서
작가는 이 책을 “급진적 공감을 위한 시도”라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그는 반복되는 모티프와 의도적 생략 등 다양한 장치들을 절제된 시적 문장 속에 녹여냈다. 예컨대 정치적 소요의 실체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채, 어제는 켜졌으나 오늘부터 켜지지 않는 옆집 불로, 오늘부터 나오지 않는 직장 동료로 서서히 주인공의 삶에 파고든다. 또한 작가는 따옴표와 문단을 없애고 문장을 쉼표로 계속 연결하는 형식적 시도를 통해 독자들을 말 그대로 문장 속에 묶어둔다. “주인공이 숨을 쉴 틈도, 악몽 속에 잠깐의 휴식도 없는”(<가디언>) 문장을 읽으며 독자 역시 주인공의 고통과 고뇌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것”이라는 저자의 설명과 부커상 심사위원장의 “정치적 이슈와 공명하면서도 오로지 문학성으로 이룬 성공”이라는 평가는 거대한 시스템의 비극을 개인적 차원의 경험으로 치환하는 이런 시도를 염두에 둔 것이다.
세상의 종말은 얼마나 자주 예언되는가
그러나 개인의 종말은 얼마나 쉽게 묵과되는가
악화되는 국내외 정세 속, 가장 시의적절한 작품
뉴스가 나오자 그녀는 분노로 몸을 떨면서 라디오를 꺼버리고 생각한다, 이건 뉴스가 아니다, 뉴스가 전혀 아니다, 모래주머니에 나른하게 앉아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군인을 집 안에서 내다보는 민간인이 뉴스다, (…) 마지막으로 자물쇠가 채워진 진입로 대문이, 밤이 와도 불이 켜지지 않는 집이 뉴스다. 일주일 동안 빨간불이었다가 결국 꺼져버리는 신호등,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할 자동차, 점점 쪼그라드는 거리의 분위기, 셔터를 내린 가게들, 합판을 댄 창문들, 쉰 목소리로 밤새 짖는 개들(…)이 뉴스다.
만약 기관의 주인을 바꿀 수 있다면 사실의 주인도 바꿀 수 있어, 신념 체계를, 합의된 것을 바꿀 수 있고 그게 지금 그들이 하는 일이야, 아일리시, 정말 간단해, 국민연합은 너와 내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을 바꾸려 하고 있어, 그걸 흙탕물로 만들고 싶어 해, 만약 A를 B라고 하면,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 그 말을 하고 또 하면 사람들은 그걸 진실로 받아들여. 물론 이건 오래된 생각이야, 새로울 건 없지, 하지만 넌 책에서가 아니라 네가 직접 살아가는 시대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지켜보고 있어.
이처럼 작가는 한 개인의 비극을 아주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몇 줄의 뉴스로 접하는 전쟁과 재앙이 ‘세상의 종말’ 같은 더 큰 혼란의 전조이기 이전에 수많은 ‘개인의 종말’임을 강력하게 환기한다. 한편,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예언’으로 읽히기도 한다. 우리가 바람직하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시스템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수 있다는 등장인물의 경고는 현실로 흘러나온다. 단적으로 작가가 이 작품으로 부커상을 받기 3일 전(2023년 11월 23일) 더블린에서는 전례 없는 반(反)이민 폭동이 일어나, 작품 속 한 장면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끝나지 않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확산되는 이스라엘 공습, 전 세계적 우경화 등 악화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날이 갈수록 더 시의적절해지고, 그 의미가 깊어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