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린 포숨의 스릴러 소설 <야간시력>
고독하고 외로운 우리는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1
국외에서 출간된 <야간시력>(원제: I CAN SEE IN THE DARK) 표지와 은행나무에서 출간된 <야간시력>의 표지(사진상 맨 오른쪽)를 모아보았습니다. 느낌이 사뭇 다르죠? 저는 은행나무에서 출간된 표지를 보고 섬뜩한 느낌보다는, 흰 눈밭을 혼자 걸어간 누군가의 발자국에 눈길이 갔어요. 그래서 쓸쓸한 느낌이 더 들기도 하는데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아무래도 책을 다 읽고 보니까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스노우맨>으로 널리 알려진 요네스 뵈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서 많은 독자분들이 알고 계실 텐데요~ 그가 무려 거장으로 대우한다는 ‘카린 포숨’의 <야간시력>이 출간되었습니다! 카린 포숨은 이미 국외에서 ‘북유럽 스릴러의 여왕’이라는 칭호로 불릴 정도의 높은 인지도가 있는 작가입니다. <야간시력>의 출간과 함께, 보도자료와 표지를 웹 카페에서 보여드리며 서평단과 기대평 이벤트를 진행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스산한 감성과 아픔이 서린 스릴러물은 단순한 오락성만 있는 소설이 아니라 그 특유의 깊이가 남달라서, <야간시력>이 더욱 보고 싶어지네요.” 등의 기대평이 주를 이뤘습니다. 또한, 그녀의 전작 <돌아보지 마>, <누가 사악한 늑대를 두려워하는가>를 통해 신작을 기대했던 독자들도 꽤 보이셨는데요. 그렇다면 ‘카린 포숨’은 대체 어떻게 ‘북유럽 스릴러의 여왕’으로까지 불리게 되었는지 알아볼까요.
#2
<Time Shift – Nordic Noir: The Story of Scandinavian Crime Fiction>라는 제목의 BBC 다큐멘터리는 스칸디나비아의 범죄 소설 이야기로 잘 알려진 작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스릴러 소설이 많이 쓰일 수밖에 없는 북유럽의 스산한 계절과 긴 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데요. 스릴러, 미스터리 등의 장르 소설을 읽다 보면 섬뜩하기도 하면서 이 책을 쓴 작가는 대체 무슨 경험이 있기에, 혹은 무엇을 계기로 해서 장르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어떻게 범죄자의 심리를 이렇게나 잘 꿰뚫어 볼 수 있지? 등의 의구심이 듭니다. 그런 의구심을 시원하게 해소시켜준 영상이 바로 위의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요 네스뵈’와 ‘헨닝 만켈’ 등의 북유럽의 유명 스릴러 작가가 출연하여 각자의 베스트셀러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작가 철학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 중에 카린 포숨도 스릴러 대표 작가로 꼽힙니다. 이들은 스칸디나비아 스릴러를 대표하는 ‘글라스 키’를 수상한 작가들입니다. 영상을 보다보면 41분 22초부터 카린 포숨이 나와 인터뷰를 하는데, <야간시력>을 보기 전, 혹은 보고 나서 이 인터뷰를 보신다면 여러 의문이 풀리실 겁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카린 포숨의 인터뷰 내용을 살짝 발췌해서 보여드리자면~
그녀의 스릴러 작가 동료 曰-카린 포숨은 매우 흥미 있는 작가이다. 왜냐면 그녀는 킬러와 희생자의 관계를 이해하고 이런 관계가 일반적으로 우연히 발생하는 것들이 아닌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킬러와 희생자를 모두 연민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카린 포숨은 작가로서의 자신의 열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독자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려 노력한다. 나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 노련한 플롯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독자를 움직이고 싶다.”
작가가 이러한 작가의 신념을 갖게 된 계기는 그녀의 어릴 적 기억과 맞닿아 있습니다. 수년 전에, 어린아이를 살해한 사람과 아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살인자와 18년 동안이나 알던 사이였는데 그녀가 알던 사람과 살인자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와 연관이 되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처음에는 믿지 못했대요. 그러나 차츰 현실을 인지하게 되고 이러한 범죄가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그 범죄자에게도 부모님과 자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3
사이코패스를 등장시키는 잔혹한 스릴러물을 접하면서 드는 사이코패스 특유의 이미지가 있었거든요. 예컨대 영화 <추격자>의 하정우 또는 <별에서 온 그대>의 신성록과 같은 악역을 보면서, ‘진짜 이해할 수 없고 잔인하기만 한 존재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잠깐!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차이를 아시나요? 보통 사이코패스를 선천적 장애로 보고, 소시오패스를 후천적 장애로 본다고 합니다. 그리고 둘의 가장 큰 차이는 감정 억제 여부입니다. 사이코패스는 자기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죄책감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고 하고요, 소시오패스는 감정조절의 마술사라고 할 정도로 감정연기를 잘 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야간시력>에 등장하는 주인공, ‘릭토르’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로 구분 지을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듭니다. 특이하게도 <야간시력>은 릭토르의 1인청 시점으로 모든 사건이 기술되는 범죄 스릴러인데, 책을 읽다 보면 물론 릭토르의 행동이 끔찍하게 느껴지기는 합니다만, 그의 아픈 속내와 외로움을 보고 있노라면 동정심까지 들 정도니까요. 그가 외로움과 혼자 사는 고독을 즐기면서도 타인과의 친밀감과 동지애를 갈구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요. 뭐, 굳이 ‘사이코패스 vs 소시오패스’ 범주 중에 릭토르의 장애 증상을 규정지으라면 ‘소시오패스’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릭토르는 심지어 살인 후에도 자기감정을 감쪽같이 속이며 농담을 던지기도 하지만, 죽음을 목격하고 나서는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기도 하면서 죄책감도 느낍니다.
#4
“신기하게도 물소리는 진통 효과가 있다.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나는 잠이 적은 만큼, 밤이 길고 괴롭다.” -<야간시력> 중
밤마다 릭토르는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 그리고 타인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간신히 잠이 듭니다. <야간시력>의 작가인 카린 포숨은 누군가 그녀가 글을 쓰는 이유에 관해서 묻자, “밤인 긴 북유럽 사람들이 즐겨 읽도록 썼다”고 대답했습니다. 겨울이 왔고 밤은 한층 더 길어졌습니다. 추워진 날씨 때문에 외출을 자제하고, 대신에 두꺼운 이불 아래에서 책 읽는 것을 즐기게 되었어요~ 책 중에서도 단연 공포나 스릴러 장르 소설을 읽는 게 제일 흥미진진해요!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스릴러 소설 <야간시력>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건 어떨까요.
끝으로, 스스로가 ‘썩어빠진 개인’임을 인정하면서도 ‘고독하고 외로운 우리는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릭토르’의 대사로 포스팅을 마칩니다.
“누구든 강점이 있다. 누구든 재능이 있다. 누구든 존중 받을 권리가 있다. 우리 인간들은 바로 이렇게 생각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썩어빠진 개인이란 존재하고, 나도 그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야간시력> 중
+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는 카피를 보니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이 떠올랐어요~ ‘살인 사건’보다 ‘인간’자체를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도 <야간시력>과 비슷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