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마주치며 따뜻하게 손 잡는 공감에 대하여.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지방시_블로그배너

1. 제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시리즈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가을이었습니다.

일을 시작한 지 어느정도 된 젊은이들이라면 흔히 찾아오는 “과연 이 길이 맞는 걸까?” 시즌이었죠. 세 번째 회사, 어디서는 몇 년 전부터 시집 가도 되겠네 소리를 듣지만 어디서는 또 막내 취급 받는, 부유하는 그런 시기.

페이스북에서 80년대에 대학원에서 공부하신 페친이 요즘도 달라진 건 없구나, 식으로 말씀하시면서 공유하신 글을, 당시 보고 있던 원고를 눈에 쑤셔박기가 괴로우니 눈 돌릴 겸 읽으러 들어가본 것이 첫 만남이었습니다.

책을 마무리 지을 무렵 광고 카피를 작성하기 위한 영감을 받으려고 선생님께 건네받은 당시 댓글 스크린샷들을 보던 중 발견한 “아무 생각 없이 읽고 있었는데 다 읽어갈 무렵에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있었다”라는 식의 댓글이 딱이었습니다. 힘든 얘긴가, 하면서 쉬엄쉬엄 네이트 판 읽듯이 읽으려고 들어가본 글에 대해 어느새 숨도 꼴깍꼴깍 넘겨가며 마음속으로나마 무릎 꿇고 읽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거든요. ㅎㅎ

KakaoTalk_20151109_171742057

#인증샷 #내용은_패스 #판권페이지에_나오는게_실명이지만

사실 저는 ‘오늘의 유머’를 원래 하지 않기에, 당시 저와 함께 이 글을 실시간으로 읽으셨던 분들이 기억하실 위 이미지의 ○○뉴스 사건 이후로 정말 응원의 글을 달고 싶어서 ‘오유(‘오늘의 유머’의 줄임말)’에 가입까지 했는데요, 가입한 지 일주일이 안되면 댓글을 못 달던가 하는 규칙 때문에 댓글을 달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버렸던 기억입니다. 내가 달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남기고 나는 어쩌다 한 번씩 가서 그간 올라온 글들을 읽고 오면 땡이었지요.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올해 봄, 평소 구독하던 <슬로우뉴스>에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2부가 연재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좋은 콘텐츠를 보면 혹시 어떻게 한번…? 하는 마음이 들지만 당시에 인문학협동조합과 이야기도 나오는 듯해서 한 발 떨어져 있었는데.. 책이 나왔을 법한 시간(연재가 완료된 후 두어달)도 지나고 했는데 별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혹시, 아직 내가 책으로 만들 기회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보았더랬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방시(‘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줄임말) 선생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것이죠.


2.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1부를 읽다 보면 좀 화가 납니다.

small지방대시간강사다_페이지와_사진

이 청년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열정페이와 부당한 처우를 다 참아내고 있는데 알아주는 이가 없어서 내가 다 분이 터집니다. 지금 대학원 석박사과정에 있는 친구들이 좀 있는지라 그 친구들의 얼굴도 자꾸 오버랩되고요. 학교에 있으면 자꾸 잡일이 생겨서 그냥 집에서 공부한다는 친구도 있고, 도서관에 있다 보면 지도교수님이 호출해 한글로 표 만드는 것도 하나하나 해드려야 해서 학부생 때 ‘님’이라 부르던 분을 ‘놈’이라 부르는 친구도 있고, 저녁에 보기로 했는데 한참을 연락이 없어서 알고보니 연구실에서 기약 없는 대기를 타고 있던 친구도 있습니다. 내 친구들의 이야기도 서러운데 지방시는, 정말 더 서럽습니다. 제 친구들이 다니는 학교나 전공이 보다 지원을 많이 받는 곳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 정도로…

사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가 오유에 처음 연재되던 때엔 지금보다 더 괴롭게 느껴졌습니다.실제로 직썰과 슬로우뉴스로 연재처를 옮기면서 선생님 나름대로 글을 다듬으셨기 때문인데요, 그곳에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다시 만난 저는 또한번 정제되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지금은 다 지우셔서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당시 선생님은 몰라주는 동료 과정생들이나 교수님들에 대한 날을 세우는, 내가 이렇게 힘들다고 그르렁대는 상처 입은 짐승과도 같아 보였습니다. 아마 그즈음에 글을 읽으셨던 분들이라면 문장과 단어는 상당히 정제되어 있지만 원망, 후회와 같은 감정들이 적나라하고도 절절하게 드러나 있었던 것을 기억하실 거예요. 하지만 오유에서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또 다른 공간의 과정생들, 시간강사들, 또 다른 영역의 노동자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선생님의 글이 차츰 변모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정말로 고무적이었습니다.

 

“나는 서른둘, 지방대학교 시간강사다.”로 시작하는 1부의 서문은, 선생님이 시급 5만 원을 받으면서 1주일에 4학점 강의를 하고, 한 달에 80시간을 일하고, 560만 원의 연봉을 받는다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처음 오유에서 이 글을 읽었을 때의 반응들,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책으로 처음 보셨을, 그리고 직썰이나 슬로우뉴스 통해 올해 소개받으셨을 독자분들은 잘 모르실 거예요. 선생님의 시급,에 주목하였던 수많은 댓글들… 시급 5만원이나 받으면서 불평만 한다, 돈을 더 벌고 싶었으면 대학원엘 가지 말았어야지, 하는 다음과 같은 댓글들..

Screenshot_2015-01-11-18-30-24-vert

#제공은_선생님 #치밀한_사람

시급을 5만원 받으면 아무것에도 불평을 하면 안 될까요? 왜 선생님은 일주일에 네 시간밖에 노동할 수 없었을까요? 네 시간만 노동하면 다른 시간에는 편하게 쉬면 되었을까요? 그리고 돈만 따져서 괴로우면 다른 일을 찾는 게 나을까요…?

굳이 제가 변명할 필요도 없이, 지방시를 읽은 분들이라면, 아니면 시간강사의 삶에 한번이라도 감정이입해보신 분들이라면 당연히 생각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일주일에 2학점이나마 강의하는 것도 운이 대단히 좋아야 가능한 일이고, 수업을 일주일에 두어시간만 하더라도 그 수업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 학생들과의 면담, 과제 첨삭, 또 어떤 경우에는 강의를 하러 가야 하는 운신의 시간까지, 표면적인 강의 시간 이외의 부차적인 시간들이 곱절로 소모됩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꿈꾸던 연구를 할 수 있는 제도권에 속해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에 녹아 있습니다. 예전에 오유에 연재할 때도 대놓고 그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 글은 내가 힘드니까 봐달라고 징징대지도, 내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고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냥,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보여줄 뿐입니다. 꿈을 꾸면서 살아가는 청년이 그 꿈을 위해 얼마나 오랜 생활을 비루하게 버텨내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이게 비단 대학원생과 시간강사의 일일까요? 지방시를 읽으며 저는 독립영화를 찍기 위해 알바하는 선배와, 연극판에 있는 선배와, 오랜 시간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친구와, 꿈을 포기한 친구와,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후배, 그들의 얼굴이 동동 떠다녔습니다. 지방시가 대학원 안의 삶을 그리고 있을 뿐, 사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버텨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대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동생이 유학을 준비한다는 집안 사정을 핑계로(사실은 전공을 연구할 깜냥이 안 돼서^^;) 덜컥 취직해버린 저는 대학원에 있는 친구들이 마냥 부럽기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학부를 같이 다닌 석사과정 친구들과의 만남을 그래서 피한 적도 있는 찌질함이 있지요. 나는 힘들게 돈 벌고 있는데 너희는 태평하게 공부나 하고 있구나. 멋모르던 시절의 괜한 피해의식이랄까..

저같이 지방시를 바라보시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을 확신합니다. 대학원의 삶은 굉장히 고매해 보이고, 진리의 상아탑에서는 왠지 모든 일들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인격적으로 돌아갈 것만 같으니까요. 하지만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학은 신자유주의의 첨단에 서 있어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통해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학의 민낯은 가관이지요. 지방시 선생님을 비롯한 제도권 안의 노동자들은 지식이라는 용역을 이용할 뿐, 우리 모두 ‘헬조선’이라 수식되는 지금의 사회에서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버텨내고 있는, 어떤 류의 노동자들인 것이에요. 심지어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어가는 지금이라면, 지방시의 이야기는 더더욱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3. 저는 첫 회사를 도망치듯 빠져나왔었습니다.

외국에 살아보고 싶어서 무작정 어학연수를 떠났던 그때는 ‘나꼼수’가 센세이션이었던 2011년 하반기였죠. 나꼼수의 가치나, 그 정치적 방향은 둘째치고라도 이국의 거리를 한참을 거닐며 팟캐스트를 듣노라면 결국 한 가지 지점에 다다르고 말았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그렇게 짤막한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얻게 된 직장은, (다시 한 번) 출판사였습니다.

정치적인 어떤 방향은 차치하고라도, 저는 조금 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회를 소망합니다. 3년 전 어느날 출근길 지하철역 편의점에서 에어컨도 못 켜고 포스를 찍고 있는 아빠뻘 ‘점주님’의 모습이, 제겐 지금도 강렬한 기억입니다. 저는 운 좋게 수도권에 부모님이 말뚝을 박은 덕분에 세입자 난민의 신세는 면했지만, 혹 생계를 책임지던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다거나 오래 편찮으셨다거나 하신다면 세 모녀 이야기가 아주 남의 일만은 아님을 믿습니다. 또한 제가 미래의 어느날 제가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혼자서, 혹은 다른 누군가와 생계를 꾸리다가 당황스러운 실수로 사회적 안전망에서 도태될 수도 있음을, 믿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타인의 삶을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낀다면 그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까요? 그렇게 적나라한 상처를 내보이던 선생님의 글이 연재를 거듭하면서 점차 온유해지고 또 정말 날을 세워야 할 곳이 어디인지 고개를 들어 바라볼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우리 모두가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내어보이면서, 서로의 아픔을 알아주고, 서로가 힘듦을 알아주고 기억해주는 것에 힘이 있음을, 그래서 저는 믿습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그런 따뜻한 공감과, 모두 얼마간 아픈 우리 세대가 서로의 아픔을 다독일 수 있는 책입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 저며본 적 있는 우리 은행나무 독자분들이라면, 이 지방시의 이야기가 한껏 물기 있게 느끼실 수 있으실 거예요. 공감할 줄 아는 우리가 더 많아지길 바라며, 모두가 낯 모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생각하며 서로를 더욱 보듬어줄 수 있기를 바라며, 제가 뒷표지에도 옮겨놓은 선생님의 감사한 말로 마무리하도록 할게요.

 

“아파도 되는 청춘은 없으니까 모두 아프지 않기를,
그리고 이처럼 아팠음을 모두 기억하고 바꿔나갈 수 있기를.”

8090 지식 노동자가 직접 말하는 공감 100% 우리 청춘 분투기
분류 정치/사회 | 출간일 2015년 11월 6일
사양 변형판 146x216 · 244쪽 | 가격 12,000원 | ISBN 9788956609423

3 +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