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자벨의 <대재난> 속 숨은 이야기, 도시 탈출 그리고 예수와 사신

대재난_블로그배너_편집후기

 ⓒ D.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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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지적인 느낌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분은 프랑스인 르네 바르자벨(René Barjavel, 1911~1985)입니다. 프랑스 SF소설의 선구자라고 불리우며, 자신이 쓴 소설에서 묘사한 미래의 일들이 실제로 실현되면서 ‘예언자’ ‘현대의 노스트라다무스’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죠. 지금으로부터 72년 전인 1943년에 발표한 소설 《대재난》을 읽으면 ‘아니, 정말 노스트라다무스였나?’ 라고 생각하게 될 만큼 근미래의 일들을 정성스럽게도 예언해놓았습니다. 예를 들면 공중현수식 초고속 열차, 화상 전화기, 로봇 무인 카페, 인공 배양육과 채소 재배 공장,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 농촌의 황폐화 및 도시 밀집 현상, 규격화·대중화된 예술, 전기 충격 요법에 의한 정신과 치료, 언론을 통한 전 국민의 정신 통제 등등 말이지요. 물론 옛날 분인 만큼, 다소 촌스러운 멋(맛이 아니라!)이 있지만, 소설 속 장면들과 현대의 과학기술과 비교해보며 나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불바다 도시를 상상해보았다~

불바다 도시를 상상해보았다~

자,《대재난》을 펼쳐볼까요? 2052년의 여름, 파리. 지구 온난화에 가뭄이 겹쳐 냉방기가 없으면 타 죽을 것만 같은 더위 속에 전기를 포함한 모든 에너지원이 모두 증발합니다. 말 그대로 갑자기 사라져 전기로 움직이는 모든 것이 멈춥니다. 냉방은 고사하고, 수천 대의 비행기도 미사일도 멈춰져 수직 낙하하고, 도로 한가운데 자동차들은 담배 한 개비에 연쇄 폭발합니다. 이제 도시는 불바다가 되어버렸고, (전기로 생산되던)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습니다. 하루바삐 탈출하지 않으면 타 죽거나 굶어 죽거나 폭도에게 맞아 죽는 수밖에 없지요. 그리하여 이 작품 속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도시 탈출, 고난의 행군기가 됩니다. 우우우, 우우, 우우우~ 우우우, 우우우~ 빰~ (나름 BGM) 모두가 불에 타 사막화가 되어버린 잿더미의 길을 꾸역꾸역 넘어가야만 하는 지옥의 묵시록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달까요.

이런 분위기...?

이런 분위기…?

하지만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사막을 지나는 필사의 탈출 한가운데에서 주인공 일행은 기이한 인물들과 마주칩니다. 바로 예수와 사신!!!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을 예수로 생각하는 남자 자신을 사신으로 생각하는 남자인데, 미래의 정신치료 실험의 일환으로 ‘오슬로 광선’이란 것을 쪼인 이들은 자신들의 망상대로 ‘되어버렸습니다’!!!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될 수 있다면~)

광인이 천천히 일어서서 두 남자를 향해 다가왔다. 손을 들어 올리더니 입을 열어 말을 했다. 근엄한 목소리였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놀라느냐? 내가 ‘이미’ 다시 살아나지 않았느냐?” (…) “빛이 있으라!” 그가 다시 구멍 뚫린 양손을 내밀자, 봄 하늘처럼 새파란 빛이 세 남자를 휘감았다. 복도의 양면이 서로 벌어지더니 끝없이 멀어져갔고, 바닥이 계속해서 내려가더니 지구의 반대편 하늘에 닿았으며, 천장이 태양보다 더 높이 올라갔다. 공간이 사라졌고, 물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발밑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 어떤 형태도 보이지 않았으며, 그 어떤 구체적인 것도 손에 닿지 않더니, 마침내 절대적인 침묵의 음악이 귓가에 들여왔고, 빛이 침투해 살을 흡수해버렸다.

“박사님, 열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해보시죠. 우리가 방금 겪은 일로 미루어 볼 때, 저기에는 무언가 위험한 힘이 작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자신이 사신이라 믿는 자의 병실에서 무엇과 맞닥뜨리게 되겠습니까?” (…) 그 순간 맹렬한 냉기가 복도를 덮친다. 두 남자는 박사가 물러서더니, 겁에 질려 경련을 일으킨 얼굴을 그들을 향해 돌리는 것을 본다.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무언가를 목격한 박사의 두 눈이 공포에 못 이겨 눈구멍에서 튀어나올 듯하다.

그는 박사의 시체를 다시 품에 안고는 피로 얼룩진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 가짜 그리스도를 만나 죽은 자 가운데 이자를 되살려달라고 청할 셈이다. 기적을 청할 것이다.*

* 과연 박사는 살아날 것인가…. 두구두구두구…

작가는 이런 식으로 비장한 분위기(라고 쓰고 의뭉스럽게 눙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의 장면장면을 만들어내는데, 현대의 독자인 담당 편집자의 입가에는 웃음이 실실 났다지요. ’4부 대족장’ 부분을 읽다 보면 낄낄 웃게 되는데, 이 부분이 왜 웃긴지는 독자분들이 직접 확인해주세요!

이에 더해, 프랑스 SF의 선구자요, 원조인 작가의 대표적인 SF소설이 30주기에 맞춰 처음으로 번역 출간되었다는, 새삼스럽지만 놀라운 소식도 함께 전하옵니다.

프랑스 SF문학의 선구자 르네 바르자벨 SF소설 첫 줄간!
지음 르네 바르자벨 | 옮김 박나리
분류 해외소설 | 출간일 2015년 10월 15일
사양 변형판 120x188 · 344쪽 | 가격 13,000원 | ISBN 9788956609348
르네 바르자벨
프랑스 과학소설의 선구자. 바르자벨의 작품은 본격적인 과학소설보다는 ‘예지문학’에 더 가까우며, 작품 속에서 묘사된 일들이 시간이 흐른 뒤 현실로 이루어지면서 ‘예언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작품 대다수가 오늘날 프랑스 고등학교 및 대학교 교과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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