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다음해 출간 리스트와 목표를 정해 발표를 한다. 어떤 책이 어떤 기대를 안고 있든지 간에, 나로서는 얼음과 불의 노래 개정판이 가장 마음이 쓰인다. 애착도 크고, 걱정도 큰 타이틀이다. 워낙 기대하고 기다리는 이들도 많은 데다가, 편집하기도 까다로운 책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개정판 작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포카리스웨이트를 먹으며 비장하게 징징대기도 했다. 부담이 곧 보람이고, 보람이 곧 부담인 이 쳇바퀴 속에서 어쨌든 이 시리즈에 대한 애착만큼은 두터워졌다.
하여, 올해 5월 왕들의 전쟁 전면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왕좌의 게임 개정판 출간 당시 가장 많이 회자되었던 키워드라면, ‘이수현 번역’ ‘자이메가 제이미’ ‘번역어 호불호’ 정도로 뽑을 수 있다. 왕들의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전체 시리즈 모두 이수현 선생님의 꼼꼼하고 섬세한 번역으로 선보인다. 번역자를 대신하여 조심스럽게 말을 해보자면,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용어들은 드라마, 기존에 익숙한 표현들, 외래어 표기법 사이에서 절충안을 찾고 정리했다. 번역어에 관한 논의는 그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얘기들인데, 어떤 건 번역어를 쓰고 어떤 건 외래어를 써서 통일성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하나하나 이건 어떻게 읽어야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는 판단과 논의 아래 정리된 것들이다. 더불어 시리즈가 완간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중에 혼선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리했다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이제 곧 왕좌의 게임 시즌 7이 방영된다. 전 시즌까지 4월에 방영되었지만 이번 시즌은 7월에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겨울이 오고 있다고 말하는 스타크가 머쓱하게도 촬영지에 ‘겨울이 안 와서’였다고 한다. 이게 지구 온난화 영향도 있다면 슬픈 일인데, 나는 대뻔뻔하게 그 핑계로 편집 후기를 쓰고 있다.
드라마를 먼저 봐야 할까, 소설을 먼저 봐야 할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막 섞어서 되는 대로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개정판을 작업하자니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보게 되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가령 왕들의 전쟁을 읽고 시즌3을 보면, 왕들의 전쟁 전체에 복선이 깔려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 전율을 같이 즐겼으면 좋겠다. 실상 왕좌의 게임은 왕들의 전쟁의 복선이고, 왕들의 전쟁은 검의 폭풍의 복선이고… 그런 식으로 촘촘하게 쌓아나가는 조지 R. R. 마틴의 치밀함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될 것이다.
반대로 드라마를 보고 나서 책을 보면, 드라마에서는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캐릭터를 재발견하게 된다. 단언컨대, 소설을 읽으면 ‘바리스’의 매력에 푹 빠질 것이다. 이 방대한 양을 편집하다 보면 아무리 재밌어도 지겨운 순간이 오는데, 그때 바리스가 나타나면 일할 만 했다. 그 언변과 지략과 축축하고 차가운 느낌은 책에서 훨씬 빛을 발한다. 더불어 제이미 역시 다시 보게 되는데, 드라마에서 제이미의 캐릭터가 변모하기 이전부터 소설 속 제이미는 본디 멋있었음을 살짝 스포한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 테온, 흑, 우리 테온. 테온의 가슴 아픈 번민 역시 소설이 주는 큰 묘미다.
큰 맥락에서는 같지만, 소설과 드라마는 다른 부분들이 많다. 누가 무엇을 발견하고, 누굴 언제 만나고 이런 부분들이 상당히 다른데, 이 긴 소설을 한정된 시간의 드라마로 얼마나 영리하게 옮겼는지 보는 것도 하나의 시청 포인트다. 예컨대 브랜이 조젠과 미라를 만나는 시점이 다르고 샘이 밤의 경비대로 성장해가는 과정 역시 소설을 보면 더욱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어느 쪽으로 봐도 그 재미가 반감되지 않으니, 마음껏 드라마 보고 마음껏 소설을 보셨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또한 검의 폭풍이 빨리 나와야 할 테니… 정말 열심히 준비해봐야지. 부릅!
이 책에는 여러 좋은 문장들이 있지만,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다음 말로 후기를 마치겠다.
과일 한 알로 날 그렇게 짜증 나게 만들 수 있는 건 렌리뿐이었다. 그 녀석은 반역으로 파멸을 자초했지만, 난 그 녀석을 사랑했다, 다보스. 이제는 그걸 알겠구나. 나는 동생이 내민 복숭아를 생각하면서 무덤에 들어갈 것이다.
개정판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는 1년에 한 부씩 출간되고 있고 3부는 내년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전자책 역시 종이책 출간이 된 후에 유통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은행나무 편집팀입니다. 현재로서는 5부까지 안정적으로 개정판을 출간하고 남은 2부의 출간까지 잘 끝마치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양장본의 경우 완간 이후에 저희가 논의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논의를 진행할 때 독자분의 의견도 꼭 함께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