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에서 잠든 아기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되고, 그 사건을 담당한 노년의 형사에겐 “지옥은 이제부터다!”라는 메세지가 적힌 엽서가 도착한다. 악의적인 장난전화에서 시작된 십 대 소년의 돌발행동은 끔찍한 살인으로 번지며 평화로워 보이던 마을을 순식간에 집어삼킨다. 노년의 형사의 이름은 바로 “콘라드 세예르”. <돌아보지마> 그리고 <누가 사악한 늑대를 두려워하는가>로 국내에 소개된 카린 포숨의 콘라드 세예르 형사 시리즈… 범죄문학 속 어느 캐릭터보다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그가 신간 <발신자>를 통해 돌아왔습니다.
인간적인 아니 너무나 인간적인 매력남
포숨의 콘라드 세예르 시리즈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는 플롯만큼이나 매력적인 주인공 캐릭터 때문입니다. 세예르는 범죄문학 속 어느 캐릭터보다도 흥미롭고 복잡하지요. 강철 같은 결의에 찬 수사관이자 심문자이지만, 피해자와 그들 가족들에게는 지나칠만큼 연민을 갖는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생각 없이 행동만이 앞선 거친 형사가 아닙니다. 자신의 보스에게 반항하거나 대인관계에 실패한 그런 형사도 아닙니다. 자신을 철저하게 절제하며 매너있게 행동하고 조용하지만 투지가 넘치는 그는 개(프랑크)를 유일한 벗으로 두고 있는 자상한 할아버지이기도 합니다. 비록 홀아비이기는 하지만 사건을 수사하면서도 자신의 딸 그리고 그녀가 입양한 소말리아 출신의 손자(마테우스)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고 있지요.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그의 파트너) 스카레가 나지막히 물었다.
“손자 생각” 세예르가 말했다. “자네도 마테우스 알지? 오페라 발레 학교에 다니고 있어. 학생들 중 한 명을 선발해 본무대에 찬조 출연시킨다더군. 4월에. … 하지만 과연 그들이 흑인 왕자를 선택할까? … 마테우스의 학교생활은 늘 순탄치 않았어. 외톨이였고. 그 어린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런데 이젠 <백조의 호수>의 왕자 역을 놓고도 피 튀기는 경쟁을 펼쳐야 돼. 안쓰럽지만 어쩌겠나.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여기서 이렇게 주절거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알이야.”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그의 무기는 총이 아닙니다. 정의에 대한 신념, 깊은 동정심 마지막으로 범죄자의 심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바로 콘라드 세예르의 무기이죠. 작가 카린 포숨은 그를 통해 피해자나 그 주변 인물, 그리고 그 가족의 사연까지 저마다 다른 색깔과 풍경으로 독자의 공감을 자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하여… 드높은 인기를 얻는 세예르 시리즈 가운데 <돌아보지마>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각색되어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주 푸근한 모습의 배우 토니 세르빌로가 바로 세예르 역을 연기했죠. 이 영화, <호반의 여인>은 아카데미상에 버금가는 이탈리아의 영화제인 다비드 디 도나텔로 어워드에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각본상을 포함하여 10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7년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고…
“카린 포숨은 진정한 거장이다.” by 요 네스뵈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칼럼에서 스티븐 킹은 2012년에 자신이 읽었던 최고의 작품으로 10편의 책을 선정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구글링을 통해 찾아보니 한국에 번역되어 있는 책들이 몇 권 있더군요. 소개해드립니다~ 미노년 스티븐 킹이 뽑은 최고의 책입니다….
스티븐 킹은 “노르웨이의 시인 포숨이 루스 렌델의 전성기 작품들에 뒤지지 않는 걸작을 완성해냈다”라고 소개했더군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팬을 보유한 요 뇌스뵈 역시 “카린 포숨은 진정한 거장이다”라고 극찬하며 북유럽 범죄문학의 여제를 향한 자신의 존경심을 공공연히 드러낸 적이 있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스칸디나비아 추리작가협회에서 수여하는 권위있는 추리소설 상인 글래스키상(Glass Key Award)을 1997년 카린 포숨이, 바로 다음해에는 요 네스뵈가 수상했다고 하는데, 이 상의 수상자에게는 정말 유리 열쇠(Glass Key)를 닮은 트로피를 수여한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종종 심심하게 여겨지기도 할 카린 포숨의 작품은 꼼꼼히 읽지 않으면 왠지 민민하다고 느껴질 정도라고 하는데요… 과연 그녀의 작품은 왜 유럽에서 많은 극찬을 받았는지 그리고 어떤 이유로 유명한 소설가들이 그녀를 ‘스릴러의 여왕’이라고 찬사를 보내는지 역자의 글을 통해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작가는 가해자와 피해자들, 양측의 입장을 깊숙이, 그리고 동등하게 파고들어 조명한다. 피해자들이 필연적으로 침묵하는 대부분의 범죄소설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스타일이다. 같은 사건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는 내러티브 구조는 인간 행동과 심리의 어두운 구석들을 들추고 탐구하는 포숨만의 독특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큰 그림 속에서 각 인물의 행위를 설명하고 결과를 묘사할 뿐, 모든 도덕적 판단을 독자들 손에 맡긴다.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지난 8월 25일 새로운 세예르 시리즈가 번역되어 영미권에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제목은 바로 <The Drowned Boy>라고 하네요, 오늘 소개해드린 <발신자>에 이어 12번째로 출간된 세예르 시리즈라고 하니… 작가도 세예르 경감을 무척이나 아끼는 듯 합니다. 그녀의 책들은 30개 언어로 번역되어서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널리 본인의 책이 출간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자….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나는 내 책들을 아주 대수롭지 않은, 차분한 이야기로 여겼습니다.
앞서 스티븐 킹이 이야기했었죠.. “노르웨이의 시인” 카린 포숨이라고…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인해 혹시 인터뷰 기사들이 없나 찾아보니.. 누군가 카린 포숨에게 작가로서 당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순간은 언제였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스무 살에 처음으로 시 모음집을 출간했을 때”라고 답하더군요. <아마 내일> 이라는 제목의 시집인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더 이상의 자료는 찾기가 힘겨운 관계로….
평소 극적인 요소가 많은 그리고 절망을 다룬 책들을 즐겨 읽는다는 카린 포숨.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두꺼운 소설이 싫어 가능한 짧고 정확하고 강렬한 글을 쓰고 싶다는 그녀는 과연 어떤 공간에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할까요?
나는 오슬로의 시골 외각에 작은 집이 있습니다. 나의 이웃은 말, 소와 양이지요. 나는 그 집의 거실에서 글을 씁니다. 특별한 방이나 (작업을 위해 가야 할) 특별한 집은 없습니다. 또 그런 것들이 필요 없기도 합니다. 나의 컴퓨터와 창문 그리고 창밖의 풍경만을 필요로 하죠.
노르웨이의 춥고, 어둡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가 어떤 면에서는 범죄 스실러 소설을 쓰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던 그녀의 신간이 영미권에서 좋은 반응을 얻기를 기원하며 이번 포스팅은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더불어 범죄를 매개로 한 인간 심리를 깊이 파고 들어가는 색다른 북유럽 소설을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더 추워지기 전에 카린 포숨의 책을 추천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