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문학사상 가장 문제적 작가가 남긴 우리 시대 기행문학의 정수

그리스 기행

마루시의 거상

원제 The Colossus of Maroussi

지음 헨리 밀러 | 옮김 김승욱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15년 5월 27일 | ISBN 9788956608662

사양 변형판 140x210 · 336쪽 | 가격 13,000원

시리즈 은행나무 위대한 생각 12 | 분야 비소설

책소개

영미문학사상 가장 문제적인 작가 헨리 밀러가 남긴 기행문학의 걸작 《그리스 기행: 마루시의 거상(The Colossus of Maroussi, Colt Press 1941)(이하 《그리스 기행》)이 ‘은행나무 위대한 생각’ 12번으로 출간됐다. 《북회귀선》의 노골적인 성애 묘사로 전 세계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켜 30여 년간 영미권에서 출간이 금지되었던 헨리 밀러는, 1964년 미 대법원이 《북회귀선》의 판금 조치가 헌법에 위배됨을 천명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성취한 위대한 작가로서 진보적인 작가 그룹의 선두가 되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미국 작가 아이작 싱어가 197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그 영예가 자기보다는 오히려 현대문학의 영역을 넓히는 데 크게 공헌한 밀러에게 돌아갔어야 했다고 언급했을 만큼, 영미문학에 남긴 족적이 크다. 소설 작품들 외에도 서구 문명, 특히 미국 문화를 신랄히 비판한 무수한 산문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저작이 《그리스 기행》으로, 《길 위에서》의 잭 케루악을 위시한 비트 세대에게 영향을 준 텍스트로도 유명하다. 이번에 한국어로 초역된 《그리스 기행》에는 헨리 밀러의 여정을 따라갈 수 있는 ‘그리스 지도’를 첨부했다.

영미문학사상 가장 문제적 작가가 남긴
우리 시대 기행 산문의 정수

로도스 항구를 굽어보고 있는 고대의 거상(巨像)처럼 《그리스 기행》은 기행문학의 고전으로 우뚝 서 있다. 작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서, 존 스타인벡의 《찰리와 함께한 여행》과 W. G.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 같은 기행 소설들에 선행한 걸작이다.

동료 소설가인자 친구인 로런스 더럴과 함께 그리스에서 6개월 동안 지낸 후 그리스와 그 나라의 과거를 깊이 있게 탐색하여 단순히 기행문이라 하기에는 훨씬 통렬한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걸작을 썼다.  《501 위대한 작가들》에서

1939년, 46세의 헨리 밀러는 9년간 지낸 파리를 떠나 배를 타고 그리스로 향했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일이다. 유럽은 이미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코르푸 섬에 정착해 살고 있던 영국 작가이자 친구인 로런스 더럴이 여러 달 동안 편지를 보내 그리스로 초대했던 것인데, 당시 밀러는 《북회귀선》, 《검은 봄》, 《남회귀선》 등 소설들을 출간하고 국외에 머물면서 작가로서의 목소리를 내던 상황이었다. 1939년 12월 그리스를 떠나 미국으로 향할 때까지 9개월간 일어난 일들에 영감을 받아 뉴욕에서 집필하고 1941년 초판을 출간한 《그리스 기행》은 우리 시대의 위대한 기행문이 되었다.
후에 밀러는 아테네와 그리스 인근의 여러 섬들, 크레타 섬과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고대 유적지들을 돌아본 것이 “지금까지 겪은 삶의 모험 속에 남은 홍수의 흔적”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시적인 상상력과 열정적인 산문으로 이 나라의 찬란한 자연 풍경을 포착하고,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생생한 초상을 그려냈다. 특히 거기에는 그가 거상(巨像)이라고 명명한 뛰어난 이야기꾼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 기행》은 3부로 나뉘어 있으며 각각 ‘미케네, 크로소스, 델포이 유적’ 방문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곳들이 아직 존재하며 고대의 이름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굉장했다. 마치 부활 같았다.”(126쪽) 각각의 장소는 신성하고 정적인 아름다움과 신비와 힘을 지니고 있었으며, 밀러의 여행은 어둠 속에서 나와 빛과 구원으로 향하는 여정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작가가 《그리스 기행》을 바친 인물, ‘마루시의 거상’ 카침발리스에 의해 가능했다.

카침발리스는 완전히 신이 나서 깨끗한 공기와 황혼에 내려앉는 청보라색 색조에 대해서, 단조로운 풍경이 다양하게 변하는 것에 대해서, 개성적인 약초와 나무에 대해서, 이국적인 과일과 내륙 여행에 대해서, 타임과 꿀에 대해서,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아르부투스 수액에 대해서, 섬사람들과 고지 사람들에 대해서, 펠로폰네소스 사람들에 대해서, 어느 날 밤 달빛에 취해서 옷을 벗어 던진 미친 러시아 여자에 대해서 날개를 활짝 펼친 독수리 같은 이야기 솜씨를 발휘했다. (…) 그가 말하는 동안 나는 아티카 풍경의 진정한 찬란함을 생전 처음 내 눈으로 직접 실감했다.(60쪽)

시적인 상상력과 열정적인 산문
그리스에 관한 그 어떤 글과도 다르다

밀러는 글쓰기를 접고 1년간 휴가를 즐길 생각으로 그리스에 왔으나, 관광이나 식도락보다는 글쓰기가 훨씬 더 필요한 일이었다. 새로 사귄 그리스인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고 서로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촉매제로서 기능했던 것이다. 화가 기카스의 집에서 카침발리스 부부와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 세페리아데스와 함께한 밀러는 다음과 쓴다.

나는 이드라에 며칠 머물면서 수천 개의 계단을 뛰어서 오르내리고, 여러 제독들이 봉안된 곳에 가보고, 이 섬을 보호하는 성인들에게 공물을 봉헌하고, 기카스의 집에 붙어 있는 작은 예배당에서 망자와 절름발이와 맹인을 위해 기도하고, 탁구를 치고, ‘오래된 골동품점’에서 샴페인과 코냑과 우조와 레치나를 마시고, 기카스와 위스키를 마시며 티벳의 승려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무염시태’ 일지를 시작하고(나중에 델포이에서 세페리아데스를 위해 이것을 완성했다), 그리고 카침발리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이 노고와 파계의 ‘9번 교향곡’을 들었다.(86쪽)

그것은 꿈같은 여행이었지만 현실에 발 디딘 여행이기도 했다. 밀러는 모든 것을 인간의 언어로 보고자 한다. “에피다우로스는 그저 어떤 장소의 상징일 뿐이다. 진짜 장소는 가슴속에 있다.”(117쪽) 그의 우주는 인간 중심적이다. 인류의 적은 인류 안에 있을 뿐이다. “인간의 적은 세균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다. 우리가 품고 있는 자만, 편견, 어리석음, 오만이다.”(119~120쪽) 사실 “모든 전쟁은 인간 정신의 패배다.”(120쪽)

밀러는 크노소스 유적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크레타 섬으로 홀로 출발한다. 크레타 섬에서의 경험은 기이한데, ‘광야에서의 40일’이라고 제목을 붙일 수 있을 정도다. 본토 그리스와 인근의 섬 어디에서나 발견한 생생한 정신을 크레타에서 발견하지 못한 밀러는 마침내 델포이를 방문하기로 한다.

기묘한 황혼 녘의 안개 속에서 바라본 델포이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장엄해서 경외심이 일었다. (…) 이제 유적을 둘러보며 이미 사라진 세상의 중심에서 마지막 신탁의 알맹이를 뽑아낼 때였다. 우리는 산 위의 극장으로 올라가 조각난 신들의 보고, 폐허가 된 신전, 무너진 기둥을 내려다보며 이곳의 찬란했던 옛 모습을 되살려보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 그렇게 조용히 경의를 표하며 서 있는데 카침발리스가 갑자기 원형극장의 중심부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양팔을 높이 들고 마지막 신탁의 종결부를 읊었다.(266~268쪽)

밀러는 ‘신탁의 종결부’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이는 아마도 율리아누스 황제가 전해 들은 최후의 델포이 신탁을 뜻하는 것 같다.

왕에게 전하시오. 아름답게 공들여 지어진 집이 무너졌다고.
집에는 아폴론도 없고, 신성한 월계수 잎도 없다고.
샘들은 이제 잠잠하고, 목소리는 조용하다고.

아폴론은 이제 죽었다. 그리스 문화를 되살릴 시간도 지났다. “잠시나마 막이 열리면서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구름처럼 어디론가 떠간 세계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세계는 손상되지 않은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사람들이 제정신을 차리고 그 세계를 다시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268쪽) 

잭 케루악과 비트 세대에게 영향을 준 작품
단순한 기행문을 넘어서서 훨씬 통렬한 의미가 내재된 걸작

헤밍웨이와 D. H. 로런스가 섞인 듯 신선하고도 예언적인 그의 문체는 이미 케루악, 진저버그, 슈나이더를 예고하고 있다. 완전한 자유를 추구하는 개인주의, 만개한 환상과 개성의 만남. 뒤이어 올 비트 세대와 마찬가지로 그는 영적 신성을 탐구하고 있었고, 카침발리스와 함께 죽음 앞에서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스토아적인 그리스인의 모습을 목도함으로써 영적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작가는 영국인, 프랑스인, 독일인, 미국인 등 서구인, 즉 서구문명을 비판하고, 그리스인들에게서만 인간의 존엄성을 발견한다. 또한 예언자적인 면모를 보이는 그는 미 제국주의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욕망에 차 질주하는 현대인들에게 고대 세계를 재발견할 것을 주문한다.
밀러는 “완전한 자유와 지적인 용기”로써 폭력과 혼돈으로 뛰어드는 세계와 그 자신의 삶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경주했기에 “단순히 기행문이라 하기에는 훨씬 통렬한 의미가 내재된 걸작”을 내놓을 수 있었다. 밀러가 보고 듣고 느끼고, 기록한 평화와 아름다움의 순간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빛으로 반짝인다. 밀러는 고대 세계에서 현재를 밝게 비춰줄 힘을 얻어 돌아왔다. 그렇기에 이 책이 여전히 그 힘을 잃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것이리라.

목차

1부
2부
3부
부록

그리스 지도

작가 소개

헨리 밀러 지음

미국의 소설가이자 산문작가. 뉴욕에서 독일계 중산층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브루클린에서 자랐다. 개성과 반항심이 강해서 대학을 포기하고, 각종 직업을 전전하면서 지적·성적·문학적 편력을 거쳤다.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193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밀러에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인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은 거침없는 표현의 자유를 발휘하여 당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들은 외설 시비로 인해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되었는데, 미국에서 출간되기까지는 30여 년이 걸렸다. 《그리스 기행: 마루시의 거상》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친구 로런스 더럴의 초대로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겪은 경험을 그린 것으로, ‘위대한 기행문 5선’에 꼽히는 기행문학의 정수이다. 밀러는 표현의 자유를 성취한 위대한 승리자로 명성을 떨쳤으며, 미국 캘리포니아에 정착하여 진보적인 작가 그룹을 이끌어나갔다. 이 시기에 《섹서스》, 《플렉서스》, 《넥서스》 등으로 이루어진 3부작 ‘장밋빛 십자가’를 완성했다. 노년에는 작가로서의 화려한 명성을 뒤로하고 수채화를 그리며 평화롭게 지냈다.

김승욱 옮김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뉴욕 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여성학 과정을 수료하고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로 근무했 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그들》 《풀이 있는 여름별장》 《그리스 기행》 《19호실로 가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이 얼마나 천국 같은가》 《시간 밖으로》 《스토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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