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가 번뜩이는 통찰로 빚어낸 현대시 개관
미당 서정주 전집 12 시론: 시 창작법·시문학원론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17년 5월 1일 | ISBN 9788956605012
사양 변형판 145x205 · 308쪽 | 가격 20,000원
시리즈 미당 서정주 전집 12 | 분야 비소설
시문학원론 · 시 창작 방법론과 더불어
1908년 최남선의 신체시부터 1960년대 한국 현대시의 현황까지
번뜩이는 통찰로 빚어낸 현대시 개관
“미당 선생께서 남기신 글은 시 아닌 것이라도 눈여겨볼 만하다. 선생의 문재文才와 문체文體는 유별나서 어떤 종류의 글이라도 범상치 않다. 평론이나 논문에는 남다른 통찰이 번뜩이고 소설이나 옛이야기에는 미당 특유의 해학과 여유 그리고 사유가 펼쳐진다.”_문학평론가 이남호
한국의 대표 시인 미당 서정주의 시, 자서전, 산문, 시론, 방랑기, 옛이야기, 소설, 희곡, 전기, 번역 등 생전에 집필한 저서 및 발표 원고를 망라한 『미당 서정주 전집』(전 20권) 가운데 전집 12~13권 ‘시론’이 출간됐다(은행나무刊).
‘시론’은 시에 관한 평론이나 논문 혹은 기 출간된 대학 교재용 저술을 한데 묶은 것이다. 『시 창작법』(1949/1954)은 조지훈, 박목월과의 3인 공저로 서정주 집필 부분만 발췌 수록하며 ‘시 창작에 관한 노트’라는 부제를 붙였고, 여기에 『시문학개론』(1959)의 증보판인 『시문학원론』(1969)을 추가하여 시론 1권을 구성하였다. 2권에는 『한국의 현대시』(1969)를 수록했다.
시인으로서 독특한 관점으로 펼쳐낸 시론
여기에 수록한 것은 내가 쓴 을유 해방 후의 문자 중에서 『시 창작법』에 얼마큼씩 관련이 있을 듯한 것만 뽑아 모은 것들이다. 뒤에 붙인 시인론 역시 내게는 그렇게 생각되어 첨가해 둔다. 일관한 체계가 없고 정리가 부족한 것이 부끄러웁다. 그래 제목을 ‘노트’라 하였다.
_『시 창작법』(1949) 서문
문학비평가나 이론가가 아닌 시인으로서 시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세웠다.이는 시 창작 체험을 반영한 결과다. 예컨대 서정주는 ‘감각과 정서와 예지’를 시 창작의 주요 단계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는 이성중심주의의 서구 문학이론에 대한 반성과 회의의 산물이며, 감각과 정서와 예지의 세 영역에 대한 독창적인 생각을 나타내고 있다(「시의 감각과 정서와 예지」). 미당의 전통주의, 신라주의, 탈근대주의 정신이 그의 창작에서만 구현되는 게 아니라 시론에서도 초기부터 탐구되어 오고 있음을 예증한다.
또한 「부활」, 「국화 옆에서」 창작의 비밀을 밝힌 「일종의 자작시 해설」과 「시작 과정」과 13권 『한국의 현대시』의 「나와 나의 시론」에서는 미당 시 창작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독할 만하다.
풍성하고 정밀한 사고의 산물로서의 시론
본저는 최근의 4, 5년간 저자가 대학에서 강의한 것이다. 자세한 것이 아직 못 되어 유감이나, 아직 이 방면의 개척이 전연 없는 우리나라의 실정에 비추어, 이만한 것이라도 시의 개괄적인 요량에 혹 자資하는 바 있을까 하여 미비한 대로나마 이것을 내기로 하였다.
_『시문학개론』(1959) 서문내가 1959년에 내놓은 『시문학개론』에다가 미비했던 것을 증보하여 『시문학원론』이라고 하기로 했다. 그동안 『시문학개론』이란 제목이 마땅치 않다고 내 학우들이 말해 주어 온 것을 생각해서, 이번에 새로 지은 것을 더하면서 제목을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요량한 때문이다. 이 『시문학원론』은 아직 황야의 일 등一燈도 채 다 못 되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러나 아직 이걸로라도 시문학의 대강의 요량을 하시는 데 일고一考거리라도 되었으면 다행으로 여겨, 감히 이것을 내놓는 바이다._『시문학원론』(1969) 서문
『시문학원론』에 담긴, 시와 관련된 다양한 담론들―사상, 운율, 현실, 체험, 상상과 감동, 영상, 지성, 시어, 암시력, 시작 과정 등에 대한 원론적 고찰도 그의 사고의 풍성함과 정밀함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는 기본적으로 방대한 독서량에서 비롯되었다. 서양문학에 대한 섭렵, 동양의 전통 인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 불경이나 성경 등 종교 담론에 대한 성찰 등이 시인의 내면에 온축된 결과이기도 하다. 플라톤 사상,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호메로스의 문학을 필두로 중세와 근대를 거쳐 쉬르레알리슴에까지 이르는 서양문학사가 전관되는가 하면, 주요 논점들을 빠짐없이 점검하기도 하는 정밀함을 보여준다. 말라르메, 발레리, 보들레르, 릴케 등의 시와 시론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 이를 우리 문학에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했다. 시경을 비롯한 동양의 한문 전적에 대한 이해, 불경과 성경 속의 예지와 삽화들을 그때그때 불러내는 구성력도 서정주가 ‘그릇 큰 시인’임을 재삼 깨우쳐준다. 요컨대 서정주는 동서고금의 인문학에 대한 풍성한 이해를 바탕으로 통시적・공시적으로 시론을 전개할 수 있는 20세기의 독보적인 한국 시인이라는 점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동시대 시인들에 대한 탁월한 시인론
여기에서 나는, 1908년 육당 최남선의 신체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우리 한국의 새 시대의 시를 사적으로 개관하고, 1945년 해방 전과 후의 특질을 대조해 생각해 보고, 1960년 이후의 현황도 타진해 보고, 또 우리 현대시사 속의 중요한 시인들에 대한 각론도 해 보았다. 다만 시인론을 해방 전 시인에만 한정했음은, 최근 20년의 시가 아직도 그것을 논정할 만한 것이 아니라 유동 중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때문이고, 또 이 유동 중의 것들은 좀 더 뒤에 후인의 평가를 기다리는 것이 바른 순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끝으로 저자인 나 자신의 시와 인생에 대한 작은 단상 하나를 덧붙여 놓았다. 이건 그저 나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심심치 않게 하려는 뜻밖에 별 딴 생각은 없다._『한국의 현대시』(1969) 서문
한국 현대시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한국의 현대시』에서 특히 동시대 시인들에 대한 시인론을 주목할 만하다. 한용운, 이상화, 김영랑, 신석정, 유치환, 노천명, 모윤숙, 이상, 자연파 조지훈·박두진·박목월, 윤동주 등 여러 시인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김소월 시론은 압도적으로 탁월하다. 1950년대 문예지에 연작 형태로 기고한 원고들인데 분량도 풍성할 뿐만 아니라, 김소월에 대한 최초의 심도 있는 논의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산유화」를 분석하는 ‘고고한 수세의 난처한 아름다움’이라든가 「초혼」을 분석하는 ‘항정(恒情)의 미학’ 등은 시인 특유의 감수성이 발현된 경우다. 김소월에 대한 어떤 비평적 담론보다 김소월 문학에 대한 본질을 잘 찾아낸 ‘시적 비평’이다. 시인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영역들을 발견한다는 것이 그의 시인론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김소월이 받은 서양시의 영향에 대한 논의도 매우 정치하고 예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인에 의해서 시도된, 김소월에 대한 최초의 전면적인 논의로서 일독할 가치가 높다.
후배 시인들에 대한 애정 어린 당부
―“우리 시인들이여, 건승하기만을 바란다”
이것은 1965년 11월부터 1966년 12월까지 필자가 어느 일간지에 발표한 시단 월평 중 일부를 추려 옮겨 놓은 것이다. 그때그때의 일반적인 동향과 특기할 만한 작품들이 지적되어 있으므로, 일종 시사적 의의가 있겠다고 생각하여 여기에 실었다._「1965~1966년의 시」에서
시단 월평을 통해 후배 시인들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기대를 보인 「1965~1966년의 시」 또한 읽어볼 만하다. 황동규, 정현종, 마종기, 문효치, 강우식, 김현승, 고은 등 지금은 문단의 원로 시인들이자 한국 현대시사의 주역들인 시인들의 신인 시절 시에 대한 날카로운 평가와 애정 어린 당부가 수놓여 있다. 이 글의 마지막에 곡진히 쓰인 “우리 시인들이여, 건승하기만을 바란다”라는 한마디는 시 문단의 선배로서 미당의 따뜻한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