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소설, 한국을 말하다
2026년 한국 사회는 무엇으로 설명되는가
가장 현재적인 키워드로 현실을 날카롭게 벼려낸 소설들
19인의 소설가가 직시한
지금, 이곳의 우리
기사가 아닌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고찰하며 큰 호응을 얻었던 문화일보 연재 기획 《소설, 한국을 말하다》가 2026년 여전히 첨예하고 현재적인 주제들로 돌아왔다. 12.3 비상 계엄과 6.3 대선을 거치며 한국 사회는 더 많은 난제를 마주한다. 이에 《2026 소설, 한국을 말하다》에서는 한국 문단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소설가뿐 아니라 학자, 번역가 등 다양하게 구성된 작가 19인이 가장 시의적인 키워드를 통해 지금 여기 우리의 모습을 담아냈다. 이들은 급변하는 한국 사회를 짧지만 깊이 있는 서사로 포착하며 그 속에서 우리가 진실로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급속도로 바뀌고, 우리 자신조차 낯설어지는 시대에 우리가 ‘우리’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작업”(박동미 기자)이라는 지점에서도 이 앤솔러지는 의미가 있다. 인공지능, 갓생, 불임, 계엄, 노벨문학상…… 오늘날 한국을 살고 있는 이들 바로 곁의 키워드로 쓰인 작품은 시시각각 바뀌는 유행과 우리를 대신할 것들이 숨 가쁘게 뒤쫓아 오는 이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뻗어 나간다.
세상 가장 고차원적이고 밀도 높은, 결코 휘발되지 않을 뉴스. 연재를 진행하면서 그것은 더욱 선명해져 확신이 됐다. 앞으로도 짓고 지어지고, 부수고 부서지기를 무수히 반복할 인간사에, 마지막까지 꿋꿋하게 남을 것은 오직 ‘이야기’일 것이라고.
_‘기획의 말’ 중에서
“잘 살고 싶어. 더. 더 잘 살고 싶어. (……)
진짜 노력하면, 죽도록 노력하면 바뀔까?”
1부에서는 개개인의 삶에 집중한 소설들을 모았다. ‘갓생’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한 삶을 살아가는 세태를 드러내거나(박연준 〈오민아의 남부러운 삶〉), 죽음마저 콘텐츠로 소비하는 젊은 세대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성혜령 〈완전한 휴식〉) 이야기가 있다. ‘탈덕’하지 않았지만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도 없는 사랑을 하는 인물(박민정 〈나는 너에게 남은 사람〉), 배달 앱 지도의 빨간 점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우리가 건네받고 건네줄 ‘온기’를 떠올리는 인물(김경욱 〈가고 있습니다〉)은 과거와 비교해 달라진 현재의 풍경을 보여준다.
짧은 소설을 읽기에도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아예 소설의 내용을 요약해 설명해주는 파격적 형식을 취한 작품(김기태 〈진취적 시민을 위한 15분 읽기〉)을 읽으면 휴식이 곧 죄처럼 느껴지는 한국 사회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 지금의 우리에게 빼놓을 수 없는 AI를 다룬 이야기들도 눈에 띈다. 챗GPT를 활용해 가상 경험이 현실보다 더 익숙해질 미래(하성란 〈발목〉)나 인공지능이 돌봄과 감정까지 관여하는 근미래(성해나 〈#유령〉)가 단순히 허구로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씁쓸함을 남긴다.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 몇 개를 노트북의 프롬프터 창에 입력했다.
강, 고요, 햇살, 매미 소리, 평화로움.
엔터. 순식간에 화면 위로 수많은 문장이 꼬리를 물며 생성되었다. 홍보팀이 원한 건 따뜻하고 안정감 있는 문구였다. 일일이 읽어볼 필요도 없었다. 어느 누가 뽑아도 다 뽑을 수 있는 무난한 문장들이었다.
_하성란, 〈발목〉 중에서
2부는 가족 단위에서 한국 사회를 바라본 작품들이다. 유명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고시와 같은 시험을 치르는 것을 의미하는 ‘7세고시’(정한아 〈키즈카페〉), 입시 당사자인 고등학생보다 더 바쁘게 살아야 하는 엄마(김유담 〈엄마의 역할〉)의 모습은 가족 내에서 엄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한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한 가족의 비극(문지혁 〈다섯째 아이에게〉)이나, 금쪽같은 아이를 가지고도 마냥 행복해할 수만은 없는 가족(이미상 〈에치치에게 경배를〉)을 보면 가족을 이루는 것에 대한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아야 하는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큰 의미를 지닌다. 어디에도 남지 않았지만 꾸준히 일해온 이를 격려하기 위한 어머니 전상서(김병운 〈일한 기록〉), 체육대회를 나가는 ‘나’와 그를 지켜보는 할아버지가 서로를 힘껏 응원하는 장면(윤성희 〈나중에 이기는 사람〉)은 우리에게 잊고 있던 일상의 다정함을 일깨우며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는, 당연하면서도 잊기 쉬운 사실을 전한다.
“아직 안 늦었어요.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야죠.”
“응, 내 생각도 그래. 수진이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수능 등급 올릴 수 있을 거야. 오늘은 잔뜩 골을 내긴 했지만, 머리가 좋은 아이니까 나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거든.”
“에휴, 형님, 지금 수진이 얘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럼 누구?”
“형님요. 지금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공부하세요. 수진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최대치의 학교를 찾아내는 게 엄마가 할 일이니까.”
_김유담, 〈엄마의 역할〉 중에서
마지막 3부는 조금 더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다. 2024년 한강 소설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번역가의 삶을 조명한 소설(안톤 허 〈영어 생활〉), 재작년 벌어졌던 계엄을 되돌아보는 작품(정용준 〈일어나지 않은 일〉), 이후 대선을 통해 한국의 뿌리 깊은 이념 갈등을 짚어낸 이야기(송호근 〈하늘엔 영광 땅엔 평화〉)는 날카로운 시대감각을 느끼게 한다. 함께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이 써내려 간 이야기가 생생하게 와닿는다. 미래의 ‘나’가 과거로 돌아가서라도 말리고 싶은 한 가지 일(정소현 〈나를 떠나지 않을 사람〉), 특별한 목소리를 가진 ‘류’가 자신의 재능으로 “여자인 류는 아는 세계”의 범죄를 막는 이야기(권김현영 〈들려?〉), 믿었던 집주인에게 전세 사기를 당할 뻔한 신혼부부(정대건 〈불안〉)의 모습에는 한국 사회에 여전히 실재하는 문제들이 핍진하게 담겨 있다.
“전화를 받은 자가 망설였고, 명령을 받은 자가 망설였고, 문서를 읽은 자가 망설였고, 전투복을 입은 자가 망설였고, 탄약고에서 실탄을 내어주는 자도 그 실탄을 받은 자도 망설였어요. (……) 망설임과 망설임이 맞바람처럼 커져 날아가는 화살을 땅에 떨어뜨렸어요. 세상에, 놀랍네요. 총이 있는데 발사되지 않다니. 몽둥이를 쥐었는데 아무도 휘두르지 않았다니.”
_정용준, 〈일어나지 않은 일〉 중에서
글이 되지 못한 글, 말로 다 할 수 없는 말
그 잔해들을 끌어모아 이야기로 기억하는 일
동시대적인 이야기들이 사실 보도가 아니라 소설로써 전달되는 일은, 기획의 말처럼 “짓고 지어지고, 부수고 부서지기를 무수히 반복할 인간사에, 마지막까지 꿋꿋하게 남을 것은 오직 ‘이야기’일 것”이라는 사실을 더욱 자명하게 한다. 우리는 이제 이 열아홉 편의 소설을 읽고 문학의 효용과 인간의 쓸모에 대한 회의가 가득한 이 시대에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이야말로 “세상 가장 고차원적이고 밀도 높은, 결코 휘발되지 않을 뉴스”일 것이라고.
박동미 기획의 말
1부
성해나 인공지능(AI) #유령
김기태 효율 진취적 시민을 위한 15분 읽기
박연준 갓생 오민아의 남부러운 삶
박민정 탈덕 나는 너에게 남은 사람
성혜령 도파민 중독 완전한 휴식
김경욱 배달 음식 가고 있습니다
하성란 챗GPT 발목
2부
윤성희 나이 듦 나중에 이기는 사람
정한아 7세고시 키즈카페
김유담 입시 엄마의 역할
김병운 퇴사 일한 기록
문지혁 불임 다섯째 아이에게
이미상 금쪽이 에치치에게 경배를
3부
송호근 정치 갈등 하늘엔 영광 땅엔 평화
정용준 계엄 일어나지 않은 일
정소현 그루밍 나를 떠나지 않을 사람
안톤 허 노벨문학상 영어 생활
권김현영 목소리 들려?
정대건 전세 사기 불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