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레이드

지음 요시다 슈이치 | 옮김 권남희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03년 5월 9일 | ISBN 8956601089

사양 변형판 128x182 · 307쪽 | 가격 12,000원

분야 국외소설

책소개

우연히 한 아파트에서 동거하게 된 다섯 남녀의 뒤집어지는 일상 이야기!

제127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첫 장편소설『퍼레이드』가 출간(도서출판 은행나무 간)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데뷔작『최후의 아들』로 문학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일본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작가 요시다 슈이치는 내놓는 작품마다 일본 최고 권위의 상을 휩쓸며 순식간에 주목받는 작가로 부상했다.

요시다 슈이치의 첫 번째 장편소설『퍼레이드』는 대중성이 높은 신인작가에게 주어지는 제15회 야마모토슈고로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심플하면서도 감각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그와 더불어 인간심리를 포착하는데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가의 솜씨가 한껏 발휘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방 둘에 거실이 있는 아파트에서 우연히 동거하게 된 다섯 남녀의 일상을 경쾌하면서도 감각적인 필치로 그려 보인다. 다섯 사람은 각기 전혀 다른 직업과 가치관의 소유자들이지만 생활공간을 공유하게 되면서 서로 연계성을 갖게 된다. 다섯 명의 동거인들은 서로 깊은 관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먹서먹할 만큼 먼 사이도 아니다. 적당히 친하게 지내며 얼마간의 간격을 유지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단층이 자리잡고 있으며, 모두들 자기 혼자만이 유리되어져 있다고 느낀다.

다섯 명의 동거인들이 차례로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옴니버스식 전개를 대하는 재미도 각별하다. 화자가 바뀌어도 시간은 흐르고 이야기는 연속적으로 진행된다. 뒤에 나오는 화자의 글 속에서 앞에 나온 화자가 어떤 심정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며, 이전 파트에서는 주인공이었던 인물을 다른 파트에서는 한낱 보조적 인물로 다시 만나는 독특한 즐거움이 있다.

다섯 명의 화자, 즉 다섯 명의 동거인들은 겉으로는 고민이 있으면 털어놓으며 친한 척 대하지만 속으로는 서로에 대해서 ‘당장 내일 헤어져도 섭섭하지 않을’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자신을 연출하여 최대한 원만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각자가 가진 생각은 본인이 화자가 되었을 때 보다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드러난다. 그 이전 파트에서 드러났던 인물됨됨이는 그저 피상일 뿐이다. 다른 화자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때는 잘 드러나지 않던 진심은 본인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갈 때 보다 적나라해진다. 당사자에게는 매우 심각한 일도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완전히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인 듯하다.

작가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사실 묘사와 재기발랄하고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표현이 많아 시종 속도감 있게 읽히는 작품이다. 문장이나 수사에 코미디 터치가 많고 대부분 단문이어서 경쾌한 느낌을 주지만, 정작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일탈을 두려워하는 현대 젊은이들의 심리 리얼하게 묘사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요시다 슈이치는 일본에서는 차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떠오를 만큼 이미 친숙한 이름이 되어 있다. 데뷔작 『최후의 아들』로 문학회 신인상을 수상하는 동시에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고, 두 번째 작품 『열대어』도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으며, 세 번째 작품 『파크라이프』로 결국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퍼레이드』에서 작가는 진지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뒤죽박죽이고, 관심이 있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전혀 관심이 없는 현대 젊은이들의 일상 속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현상을 들춰낸다. 그런 한편 이들의 청춘에는 빛나는 미래도 고통도, 꿈도 희망도 없으며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변함없이 줄줄이 이어지는 일상뿐임을 풍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거리를 보면 많은 차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룰을 지키며 달리고 있다. 그것은 마치 퍼레이드와 같다. 하지만 누구든 그 룰을 깨면 사고를 일으키게 되어 있고, 그 퍼레이드에서 배제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슬픈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젊은이들의 시끌벅적한 청춘동거 스토리로 읽히다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작가의 날카로운 현실감각과 만나게 된다. 현대사회를 사는 젊은이들의 비극적 단면이 아주 잘 표현되어 있는 마지막 장면을 읽을 때는 섬뜩한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퍼레이드』는 룸셰어를 테마로 다룬 소설이기도 하다. 룸셰어는 ‘아파트나 단독주택에서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공동으로 생활하는 것’을 가리키는 일본식 조어다. 룸셰어란 말은 TV 드라마인 <비버리힐스의 아이들>에서 영향을 받아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 독특한 문화적 행태이다. 이렇듯 이 작품의 표면적인 카테고리는 엔터테인먼트라고 할 수 있으나 인간드라마로서도 깊이가 있어 순문학작품으로도 읽을 만하다.

“나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이지만,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커뮤니케이션이 그리 원활하지 못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최소한의 유대를 갖고자 애를 썼으며, 그런 젊은이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 제15회 야마모토슈고로상 수상 소감 중에서

 

―『퍼레이드』에 나오는 다섯 명의 동거인들

1. 스키모토 요스케
21세·H대학 경제학부 3학년
현재, 시모기타자와의 멕시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 중.
2. 오코우치 고토미
23세·무직
현재 인기배우 “마루야마 도모히코”와 열애중.
3. 소우마 미라이
24세·일러스트레이터 겸 잡화점 점장
현재, 삶을 고뇌하며 음주에 심취 중.
4. 고쿠보 사토루
18세·자칭 “밤일”에 종사
현재, 쓸모없는 젊음을 팔아치우는 중
5. 이하라 나오키
28세·독립영화사에 근무
현재. 제54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향방을 예상중

작가 소개

요시다 슈이치 지음

1968년 나가사키 현에서 태어나 호세이대학교 경영학부를 졸업했다. 1997년 《최후의 아들》이 제84회 문학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2002년 《퍼레이드》가 제15회 야마모토슈고로상을, 《파크 라이프》가 제127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춘 작가로 급부상했다. 2007년 《악인》으로 제34회 오사라기지로상과 제61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2010년 《요노스케 이야기》로 제23회 시바타렌자부로상을 받았다. 현대인의 감성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동시에 세련된 문장과 탁월한 영상미를 발휘하는 그는 현재 일본 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의 작품 중 《동경만경》은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퍼레이드》, 《악인》, 《요노스케 이야기》 등이 영화화될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 외 작품으로 《사랑에 난폭》,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원숭이와 게의 전쟁》,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하늘 모험》, 《사랑을 말해줘》, 《랜드마크》, 《캐러멜 팝콘》 등이 있다.

권남희 옮김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 지은 책으로 《길치모녀도쿄헤매記》, 《번역에 살고 죽고》, 《번역은 내 운명(공저)》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저녁 무렵 면도하기》,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등의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를 비롯하여 《빵가게 재습격》, 《밤의 피크닉》, 《사랑에 난폭》, 《퍼레이드》, 《멋진 하루》,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부드러운 볼》, 《다카페 일기 1, 2, 3》,《공부의 신》,《애도하는 사람》,《달팽이 식당》,《카모메 식당》, 《누구》, 《배를 엮다》, 《질풍론도》, 《더 스크랩》,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외 많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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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서평
한방 쓰는 5명의 "가면 人生"
출처: 중앙일보
한방 쓰는 5명의 "가면 人生"

1968년생 일본 작가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는 요즘 한국과 일본의 독서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일본 작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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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대학 경영학부를 졸업한 뒤 별다른 직업없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20대 초반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 요시다는 97년 데뷔작 "최후의 아들"이 문학계 신인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파편""돌풍""열대어" 등 후속작들이 잇따라 일본 최고 권위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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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02년 "파크라이프"로 127회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그는 유일한 장편소설인 "퍼레이드"로 대중성 높은 신인작가에게 주어지는 야마모토슈고로상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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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을 대표하는 상을 차례로 거머쥐었다고 치켜올려지는 가운데 국내 출판사들이 발빠르게 그의 작품들을 번역.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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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권의 소설집 등 그의 네권의 소설 중 "파크라이프"(열림원)가 최근 출간된 데 이어 이번에 "퍼레이드"가 나왔고 "열목어"(문학동네)가 번역이 끝나 곧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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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소설의 흡인력은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다. 아파트나 단독주택에서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공동으로 생활하는 "룸셰어"라는 일본의 요즘 풍조를 다룬 소설에는 모두 다섯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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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의 남자 대학생 스기모토 요스케, 인기 탤런트와의 사랑에 목맨 대책없는 아가씨인 23세의 오쿠치 고토미, 오쿠치의 친구이자 술에 관한 한 웬만한 남자 술꾼보다 화끈하게 "고"를 외치는 24세의 소마 미라이, 공원을 배회하는 청소년 남창인 18살의 고쿠보 사토루, 다섯 식구의 좌장으로 일견 가장 건실해 보이고 나머지 넷의 상담역인 28세의 이하라 나오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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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의 남자와 두명의 여자가 차례로 화자가 돼 풀어내는, 특별할 것도 없는 "룸" 주변의 신변잡사들은 작가의 능청스러운 서술, 허를 찌르는 상황 설정 등에 힘입어 때로는 폭소를 자아내고, 때로는 미소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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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새벽에 갑자기 생각이 나 냉장고 냉동실의 성에를 제거하던 미라이와 목이 말라 잠이 깬 요스케가 나누는 짧은 대화 장면은 절로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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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척 없이 다가온 요스케에게 미라이가 "무서웠다"고 타박하자, 요스케는 오히려 자신이 무서웠다고 항변한다. 새벽에 캄캄한 주방에서 냉동실 성에를 제거하는 여자. 겁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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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상당 부분 웃음 유발에 주력하고 있고, 다섯명은 하나같이 개인주의적이고 폭발적인 행동이나 힘의 지향과는 거리가 먼 무기력한 존재들인 까닭에, 공유되는 룸은 평화스러워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섯명 모두 문제적인 인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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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초밥집을 하는 아버지의 후원에 힘입어 도쿄로 유학 온 요스케는 선배의 애인과 하룻밤을 보낸 뒤 죄책감에 사로잡혀 아침 식탁 선배 애인 앞에서 팬티 바람으로 서럽게 눈물을 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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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균열이 심한 주인공은 나오키다. 조깅을 즐기는 건실한 생활을 하는 나오키는 실은 룸 주변에서 빈발했던, 여자들만 골라 안면을 뭉개놓은 잔인한 폭행의 장본인으로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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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선량해 보이는 외면과는 달리 폭력과 이기주의로 일그러진 내면 사이의 이율배반, 그 괴리를 이해하는 실마리는 미라이의 다음과 같은 사변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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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연기하는 수밖에 없다는". 실제의 모습은 그 누구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룸"은 결국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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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 유머가 줄어들며 다소 지루해지지만 소설의 메시지는 경청할 만한 것이다. 가정이나 조직이나, 국가라는 이름의 "룸"에서 우리는 혹 본모습을 숨긴 채 어떤 가장된 역할을 맡고 있지는 않은가.


2003년 5월 19일 월요일
신준봉 / 중앙일보
他者의 시선앞에 ‘발가벗은 나’
출처: 문화일보
他者의 시선앞에 ‘발가벗은 나’

그것이 꼭 생물학적 나이와 겹치는 연대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이십대 초반은 있다. 어설픈 연애에 막 실패했으며, 야무지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 틈에 앉아 하릴없이 소설책이나 뒤적이던,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던 그때. 부신 봄 햇살에 괜히 주눅들어 남들 앞에서는 외려 더욱 아무렇지 않게 웃던 그때. 오후 강의를 땡땡이친 채 PC통신 대화방에 틀어박혀 생면부지의 ID와 인생 상담을 주고받던 그때. 아마도 나는 만 스물 두 살이었을 것이다.
‘퍼레이드’의 마지막 장을 덮고 잠시 절망했다. 이건 반칙이야, 라고 중얼거렸는지도 모르겠다. 백 퍼센트 편견으로 말한다면, 소설가의 입장에서 만나는 타인의 ‘좋은 소설’이란 대략 두 부류가 아닐까 싶다. 경외하고 감탄하되 나는 저런 방식으로 작업할 수는 없겠다 생각되는 소설. 그리고 세간의 객관적 평가와 상관없이 작가에 대해 맹렬한 질투가 일어나는 소설. 일본의 젊은 소설가 요시다 슈이치의 첫 장편 ‘퍼레이드’는 내게 후자(後者)다. 언젠가는 나도 ‘이십대 초반’의 정서에 관한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욕망했기 때문이리라.

이 소설에는 다섯 명의 주요인물이 등장한다. 21살의 요스케(남자)는 선배의 여자친구와 몰래 사귀는 대학생이다. 10km를 주행하면 멈춰버리는 중고자동차를 가지고 있다. 23살 고토(여자)는 ‘백조’다. 잘 나가는 미남탤런트의 숨겨진 애인이며 그의 전화를 기다리면서 하루를 보낸다. 24살의 미라이(여자)는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잡화상 점원으로 ‘꼭지가 돌’ 때까지 술 마시기를 좋아한다. 18살의 사토루(남자)는 중학교 중퇴의 동네 ‘양아치’다. 미라이의 표현에 의하면 ‘어린 주제에 톳나물을 좋아한다.’ 28살 나오키(남자)는 독립영화사의 직원이고 건강에 아주 관심이 많아 틈만 나면 조깅을 한다. 그리고 이들 다섯 명은 한 집에 사는 룸메이트다. 자,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가.

글쎄,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방 두 개와 코딱지 만한 거실, 주방으로 이루어진 이 작은 집에서 이들은 ‘따로 또 같이’ 비교적 잘 지낸다. 스스로들 터득한 ‘거리(距離)’의 법칙 때문이다.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면 달려오던 차들은 어김없이 정지선에 멈춘다. 그 뒤로 달려오던 차도 앞차와 거리를 두고 부딪치지 않을 정도의 위치에, 또 그 뒤에 오는 차도 같은 간격을 두고 멈춘다.(p.9)” 마치 퍼레이드의 행렬처럼 일렬로 줄지어 달리는 한, 서로의 생에 깊이 개입하지 않는 한, 그들은 영원히 안전하다.

소설은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마다 다섯 명의 인물이 각각 일인칭 화자 ‘나’로 교차 등장하여 진술하는 형식을 취한다. 문제적인 것은 여기서 일인칭으로 말하는 ‘나’의 진술은 철저하게 ‘나의 시각’ 이라는 점. 일반적으로 독자가 소설의 일인칭 화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란, 자신의 내면을 투명하게 발설하고 고백하는 진실한 ‘주체’의 그것이다. 그러나 ‘퍼레이드’의 ‘나’ 들은 자신이 ‘나’가 되어 발언할 때와 다른 ‘나’에 의해 관찰될 때 사뭇 다른 모습이 된다.

작가는 일인칭 교차 시점을 통해 인간의 내부에는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여러 가지의 모습이 숨겨져 있음을, 또한 ‘나’조차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음을 섬뜩하게 드러낸다. “그러니까 넌 네가 아는 사토루 밖에 모른단 말이야. 마찬가지로 나는 내가 아는 사토루 밖에 몰라. 요스케나 고토도 그들이 아는 사토루 밖에 모르는 건 당연한 거야… 그러니까 모두가 알고 있는 사토루는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야. 그런 사토루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어. (pp.180-181)”

‘이 집 전용의 나’를 만들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생활하고, ‘이 곳이 실제로는 꽉 찬 만실(滿室)이면서 텅 빈 공실(空室)이 아닐까’ 혹은 ‘누군가가 나에게 의지할 때 사람들은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의심하지만, ‘상대가 말하지 않는 것을 직접 물으면 안 된다’고 되뇌는 것. 그것이 어른들의 인간관계라면 이 책은 내가 읽은 가장 솔직한 성장소설이다.

가끔 그때가 생각난다. 1994년, PC통신의 채팅 방을 들락거리던 시절. 어디에도 하지 못한 얘기를 낯선 ID에게 털어놓곤 했다. 비밀이란 돌이켜보면 별것도 아니어서, 친구들이 모두 남처럼 느껴져요, 라거나 저는 너무 이기적인 아이여서 평생 아무도 사랑하지 못할 거예요, 같은 몹시 간지러운 대사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때 내가 정한 나의 ID는 ‘myself’ 였다. 그렇게라도 내가 누구인지 확인 받고 싶었나 보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고 싶었나 보다. 그때 나에게 힘내세요, 괜찮아요, 선의를 베풀어주던 사람들. 컴퓨터 앞에 웅크리고 앉은 그들의 뒷모습에 대해 언젠가는 정말 내 손으로 쓸 수 있을까? “난 여기 생활이 인터넷 채팅하는 것처럼 느껴져.” 라고 고토가 고백했을 때, 내가 조금 울었던 이유는 어쩌면 그것이다. 권남희 옮김.


2004년 2월 5일 목요일
정이현(소설가) / 문화일보
축제의 퍼레이드, 인생 `브라보 아워 라이프`
출처: 북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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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하지 않는 청춘들의 인생 `퍼레이드`
출처: 북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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