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연애소설 이상의 이야기
캐러멜 팝콘
사랑 뒤에 숨은 비밀, 거짓말 그리고 배신……
모든 사랑은 그늘과 양지의 경계 위에 존재한다
열등감을 숨긴 채 도시적인 삶에 얼렁뚱땅 묻어가는 왕년의 양아치, 신도 레이.
거역할 수조차 없는 운명을 끌어안은 채 무덤덤한 척 살아가는 오지 나오즈미.
일로도, 사랑으로도 마음의 깊은 공동(空洞)을 채우지 못하는 커리어우먼, 오지 게이코.
결혼을 했지만 친구 다나베에 대한 사랑으로 늘 가슴 한구석이 쓸쓸한 오지 고이치.
이들이 그려가는 어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이야기, 《캐러멜 팝콘》
네 명의 남녀를 화자로 담담하게 변해가는 사계의 정경을 그리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 매일을 영위해 가는 속에서 숨기고 있는,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작은 진심과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작은 비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거짓말과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는, 아슬아슬하면서도 매력적인 요시다 슈이치의 신작 《캐러멜 팝콘》(은행나무 刊)이 출간되었다.
《캐러멜 팝콘》은 고이치·나오즈미 형제와 고이치의 아내 게이코, 나오즈미의 연인 신도 레이, 이 네 명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어느 한 해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가족을 중심으로 이어진 네 사람의 사랑과 연애 모양을 통해 사랑, 결혼, 가족이라는 달콤한 이상 속에 숨어 있는 씁쓸한 군상들을 그려나가며, 모든 것을 속속들이 보여주지 않는 인간관계, 현대인이 어쩔 수 없이 지니게 되는 공허함, 남녀의 흔들리는 마음과 미묘한 거리감을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좇아 평범한 일가와 그 가족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의 초상이 펼쳐지는데, 한 편의 트렌디 드라마처럼 가벼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가족의 사정이 서서히 드러난다.
한 쌍의 부부와 한 쌍의 커플 그리고 한 남자의 달곰씁쓸한 사랑
중학교 때 잘나가던 양아치였던 신도 레이는 누구나 아는 프랑스계 유명 브랜드 H의 홍보부에 막 입사한 사회 초년생이다. 고등학교 때 양아치 생활을 청산하고 그럭저럭 공부에 매진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작년 우연히 재회해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 오지 나오즈미가 있다.
나오즈미는 재수를 해서 아직 대학생. 이렇다 할 구직활동도 하지 않고 그저 흐리멍덩한 매일을 보내며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매사 무사태평한 태도로 일관하지만 ‘출생의 비밀’이라는 아픈 상처를 짊어지고 있다. 그는 요즘 마음이 불편하다. 부모님과 사는 본가에 결혼한 형 부부가 동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동거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나오즈미의 형수 오지 게이코.
게이코는 패션지 부편집장으로, 휴일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다. 성실한 남편과 자애로운 시부모의 이해와 사랑 아래 누가 보더라도 부러운 결혼 생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옛 남자친구와의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게이코의 남편인 고이치는 중견 신용금고회사에 다니며 친구와 함께 아마추어 극단을 만들어 연극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게이코와 고이치는 부부지만, 그들의 생활은 게이코가 “둘 다 혼자 사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스침의 연속이다.
이런 고이치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 다나베가 있다. 이혼을 앞두고 있는 다나베는 일요일 오후면 고이치에게 전화를 걸어 고이치를 데리고 나간다.
한편 본가에 들어와 살게 된 고이치 부부와 교차하듯 양친이 방콕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어 집을 나가는데, 그 빈 공간에 고이치에게 거액의 돈을 빌린 다나베가 들어오게 되고, 그들의 미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속마음과 비밀이 싸우는, 현대인의 쓸쓸한 삶의 풍경
《캐러멜 팝콘》은 연인관계, 가족관계, 부부관계, 친구관계 등 모든 인간관계의 표층과 심층을 날카롭게 파헤친 소설이다. 뿐만 아니라 사랑 혹은 행복이 지닌 양면성, 일상의 불안감, 마음 둘 곳 없는 현대인들의 고독감, 사람과 사람과의 거리감, 현실의 위기감을 리얼하고도 섬세한 필치로 펼쳐 보이고 있다.
담담하게 펼쳐지는 주인공들의 일상을 좇다보면, 독자들은 밝고 평온한 한 가정의 행복이 거짓말, 비밀, 배신이라는 위태로운 그늘로 지탱되어 있었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나약함에서 오는 고독감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상처 입힐 배신이라는 행동을 취하고 마는 인간의 교활함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옳은 것 같지는 않지만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관계들이 등장하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각자 나름의 거짓말과 비밀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의 동요를 상대에게 다 드러내 보이지 않고 살아간다. 상대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그늘을 숨기고 그 그늘을 드러내려고 하지도 않고, 상대의 그늘에 발을 들여놓으려 하지도 않는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진짜 자신을 내보이지 않고 마치 연극을 하듯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저마다 품고 있는 거짓말과 비밀은 서로의 유대 관계를 해칠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이라서, 얼핏 평온하고 북적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일상은 손을 맞잡고 외줄을 타는 것처럼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인생에는 뚜렷한 기승전결이 있을 수 없듯, 너무도 리얼한 이 소설은 특별한 사건 없이 어떤 사람에게는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어떤 진실들 사이를 오가며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느낌으로 진행된다.
흔들리는 현대인의 고독한 혼을 따뜻하게 감싸다
‘현대인의 고독과 불안’ ‘공허한 인간관계’는 요시다 슈이치가 그려온 18번 테마이다.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캐러멜 팝콘》은 기존의 작품과 달리 현대인의 깊은 상처를 드러내기만 하고 끝맺는 결말을 취하지 않는다. 그 흔들리는 현대인의 고독한 혼을 감싸듯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있다.
이러한 점은 ‘타인을 받아들이는 장소’인 고이치·나오즈미 형제의 본가, 오지家로 대표된다. 각인각양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그 중심에 있는 오지家는 부모자식, 형제, 부부, 친구, 연인 등 몇 개의 관계성이 교차하는 장소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말하지 않는 비밀과 거짓말을 안고 살아가고는 있지만, 진실을 가슴에 묻은 채 무의식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 거기에 임하는 것으로 가족의 형태를 만들어왔다.
이들이 비밀을 갖게 된 것은 스스로의 나약함 때문이지만, 이 비밀을 드러내지 않고 가슴에 묻은 것은 자신이 상처 입을까 두려워서가 아닌, 상대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아서이고, 나아가 유대 관계를 깨지 않기 위해서인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타인의 존재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머물 곳을 찾고 있는 듯한 네 사람의 마음이 쓸쓸하지만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다.